기타설교

    2025년 7월 4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시편 88편 1~18절)
    2025-07-03 11:25:41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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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의 노래 (시편 881~18)

     

    [고라 자손의 찬송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오늘 본문은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 무거운 시편입니다. 표제어를 보시면 헤만의 마스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마스길은 교훈이라는 의미로,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는 뜻이며 이어서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는데, ‘마할랏르안놋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감기나 골절처럼 조금 앓다가 낫는 병이 아닌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 베데스다 못의 삼십팔 년 누워 지낸 병자처럼 누구도 손 쓰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 이 질병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저주받았다고 손가락질까지 받게 되는, 그런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의 기도가 아닐까? 학자들은 그렇게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과는 상관없는 시편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저마다 병든 영역이 있고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오래 묵은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 아픈 게 제일 아프고, 내 문제가 제일 고달프고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끝이 없는 듯한 막막한 고난 속에 있을 때, 오늘의 시편이 어떻게 기도하라고 교훈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881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시인의 고통이 어릴 적부터 계속된, 오랜 고통임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랜 고통으로 주변 사람이 다 떠나서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다.’ 흑암만이 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아픔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탄식의 말만 쏟아 놓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언뜻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 시인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881절에서 시인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는지에 따라서 간구의 분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여!’ 하면 엘로힘!’ 강하고 힘 있는 분,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주님께, 내 삶에 능력을 행하여 주시길 구할 때의 호칭이라면 여호와여!’보다 개인적이고 깊은 관계의 맥락에서 사용하는 호칭으로, 이스라엘 백성과의 특별한 언약 관계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여호와여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다 부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넌 저주받았다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벌 받을만한 죄를 지었나보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님께서 너를 이런 고통 가운데 계속 두실 리가 없다고, 네 옆에 있다가는 부정한 것이 옮겠다라며 다 떠나갔지만.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상황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입술에서 찬양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의 탄식과 탄원 속에는, 결국엔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레 욥이 생각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신 대로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사탄은 그런 욥을 음해(陰害)합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온갖 복을 부어 주셨으니까, 욥이 하나님께 잘하는 거죠! 다 뺏어보십시오!”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욥을 신뢰하는 하나님은, 사탄에게 증명하시려고 욥에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십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들과 재산, 건강까지도 전부 잃어버립니다. 욥을 위로하러 찾아왔던 친구들은, 욥의 처참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엄청난 고통 앞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신 대로 자신의 신앙에는 까닭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욥기 120절을 보면 아들 일곱, 딸 셋이 한 날에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욥의 반응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만일 우리에게 옷을 찢고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릴 만큼 슬프다 못해 분노가 치밀만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뒤에 예배하며가 따라올 수 있을까요? 자식 열을 한 날에 다 잃은 욥은 옷을 찢고 머리털을 다 밀어 버릴 만큼, 마음이 괴롭고 슬프고 분도 났지만, 곧이어 땅에 엎드려 예배했다고 욥기는 기록합니다. 사탄은 욥이 다 까닭이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모욕했지만, 욥을 향한 하나님의 믿음대로 욥은 반응합니다. “나는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이것이 오늘 시편 88편의 기자가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어릴 적부터 고난을 겪었고, 내 친구는 어둠뿐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아무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이 시편은 나는 흑암 가운데 철저히 홀로 있다라며 기도의 끝을 맺습니다. 완전한 고립과 단절 속에서 끝나는 비극적인 시편이지만,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울고 있는 신실한 믿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으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이것이 연약한 인간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느끼는 모든 아픔과 슬픔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시기에, 선하시고 전능하신 그분께만 기대와 소망을 두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시편은 우리가 고통 중에 기도하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고 교훈합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만이 아니라, 깊은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가 되심을 더욱 절절히 고백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라고 우리를 응원합니다. 결코 소화하기 쉬운 말씀은 아니지만,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덤에 누운 것 같은 절망에 빠진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그 사실을, 우리의 조급함으로 포기하지 않도록, 날마다 믿음 더하여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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