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 (디모데전서 1장 12~20절)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지전’이라는 한국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53년, 6.25 전쟁의 휴전 협정을 하루 앞두고 남과 북은 서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휴전 협정을 앞둔 군인들은 휴전 협정에 기뻐할 여유도 없이, 다시 한 뼘의 땅을 위해 싸우라는 명령을 받고 고지로 향합니다. 한 뼘의 땅을 위해 수없이 많은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우리에게 전쟁의 이유를 묻습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 역시 전쟁터가 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불화나 직장 내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등 여러 어려움을 통해 이런 치열함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렇습니다. 분명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모였건만, 우리는 수없이 마음이 나누어집니다. “내가 이러려고 교회 다니나”하는 순간도 많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내가 받은 직분과 봉사의 사명이 더욱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올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투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에게 주신 직분의 이유, 싸움의 이유를 명확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8절 말씀을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이 선한 싸움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싸움을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들이 창세기의 족보와 고기를 먹는 문제를 가지고 복음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후매네오와 알렉산더는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자신들이 더 높아지는 싸움을 해온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바울은 어떻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 15~16절 말씀을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선한 싸움의 목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선한 싸움을 하는 그의 정체성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영원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파동 교회 성도님들, 우리는 어떤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돌아보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 삶의 자리에서 많은 복을 주신 이유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고, 금전적인 보상이 없는 것 같아 힘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한 싸움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길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디모데 역시, 자신이 받은 직분을 감당하며 외로운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를 ‘아들 디모데’라고 부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여러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들 다니엘아. 아들 아무개 성도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싸움의 목적이 되십니다. 선한 싸움을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붙잡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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