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8월 4일(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겔 35:1~15)
    2026-08-03 22:48:4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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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 (에스겔 351~15)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4)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네가 황폐하게 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5)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7) 내가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 자를 다 끊을지라 (8) 내가 그 죽임 당한 자를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죽임 당한 자를 네 여러 멧부리와, 골짜기와,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9) 너를 영원히 황폐하게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0)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11)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하리라 (12)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폐하였으므로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13)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1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되 (15)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무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1.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경쟁의 시대입니다. 학교, 직장, 사업의 현장에서 우리는 경쟁합니다. 학생들은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직장인들은 승진을 위해, 사업가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서로를 성장시키며 사회를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삭막해지고 비인간화됩니다. 누군가의 실패와 아픔을 곧 나의 승리와 기쁨으로 인식합니다. 상대방을 함께 공존해야 할 인격적인 대상이 아닌 싸워 이겨야 할 적대적 대상으로만 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에스겔 35장에서 하나님은 이러한 태도를 가진 자를 향해 준엄한 경고를 하십니다. 형제의 불행과 아픔을 자신의 유익으로 삼으려 했던, ‘에돔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2.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에돔의 죄는 무엇일까요? 에스겔 35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에돔 족속은 잘 알다시피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를 조상으로 둔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에돔은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형제 국가입니다. 하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을 경쟁해야 할 국가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흥함을 시기 질투했고, 그들의 쇠락을 기뻐했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에게 침입당해 약해진 순간, 그들을 돕기는커녕 형제 국가를 짓밟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유다 민족(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침략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약탈당할 때, 에돔 족속은 도망치는 형제들을 칼로 치며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시편 1377)’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에돔을 강하게 심판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인 이스라엘이 환난을 겪을 때 그것을 기뻐했고 이웃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지 않고 그 기회를 틈타 자신들의 유익을 구했습니다.

     

    3. 에돔의 속내가 에스겔 3510절에 잘 드러납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여기서 두 민족과 두 땅은 북이스라엘남유다를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게 되는데, ‘에돔은 이 기회를 포착해서 빈집 털이를 생각한 것입니다. 이미 국력이 기울고 황폐해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땅을 한꺼번에 차지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제 저 땅은 주인이 없다. 이제 이것은 내 것이 될 수 있다!” 여러분, 이것이 에돔의 진정한 죄입니다.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타인의 불행을 자기 유익의 기회로 본 것입니다.

     

    4.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에서 이 에돔의 죄악 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보며 은근히 느끼는 안도감, 경쟁자의 실수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잠언 2417)’ 설사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도 아이고 잘 됐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런 맘 품지 말라는 거예요. 오히려 그것을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5. 오늘 본문 말씀 에스겔 3510절 후반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에스겔에서 강조되는 거기 계신 하나님여호와 삼마가 여기에서도 등장합니다. 아마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황폐해지고 그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확신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 땅에 계시지 않는다그래서 이제 그 땅은 우리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전히 거기에 있다.”

     

    6. 여러분,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스라엘이 고통당할 때, “이 녀석들 한번 매운맛 좀 봐라!”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의 자리에 함께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갈 때도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흥할 때든 쇠할 때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셨고 여전히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죄악으로 징계를 당할 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시편 23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7. 이 말씀은 역으로 말하면, 만약 우리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더 심하게는 그 고통을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고통의 자리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바로 고통과 아픔의 자리, 거기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8. 따라서 남의 불행으로 얻게 된 기회를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독사의 알입니다. 우리가 노력해 얻은 성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남의 불행과 실패를 나의 성공과 기쁨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웃의 성공을 함께 축하해 주고, 그들의 고통에 함께하는 삶,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문)) 하나님, 경쟁사회를 살아가며 우리도 모르게 남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기뻐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을 닮아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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