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3월 18일(수)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마 24:1~14)
    2026-03-17 19:40:4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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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8() ! ! ! 아침밥 왔습니다.

     

    사랑하고 인내하고 전도하십시오. (마태복음 241~1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318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4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사랑하고 인내하고 전도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려 82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지어진 건물입니다. 82년이면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B.C 19년부터 A.D 63년까지 에돔 사람 헤롯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이 건물을 건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모두 세 번의 성전 건축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솔로몬 성전, 두 번째는 스룹바벨 성전, 세 번째는 헤롯 성전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작은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고, 가장 큰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솔로몬이 만든 성전도 헤롯 성전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헤롯 성전은 오랫동안 만들어진,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헤롯 성전이 파괴된 것은 만들어진 지 불과 7년 만이었습니다. 훗날 로마의 열 번째 황제가 되는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됩니다. 건축하는 데 82년이나 걸린 성전이 불과 7년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이 될까요?

     

    건축물은 일반적인 예술 작품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위엄권위를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큰 건물에 들어서면 그 건물의 크기에 압도되어 때로는 신비감도 들고 경외감도 느낍니다. 만약 그 건물이 성전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한 성전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처럼, 정말 그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82년 동안 건축한 성전이 불과 7년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종교의 최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종교는 결국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어제 말씀처럼 겉보기에 대단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마태복음 241~14)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겉모습만 바라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 131절을 보면, 성전의 크기와 외모에 대해서 감탄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님!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누가 뭐라도 말해도 이 성전만큼은 영원할 것입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태복음 242)’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멸망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재생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들은 제자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무너져도 하나님의 성전만큼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이들에게 이러한 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이라 해도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성전은 금세 무너지고 맙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여러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소계시록(小啓示錄)’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처럼 종말에 일어날 여러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이 언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언급되는 여러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흥분하지 말고 미혹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첫 번째로 일어날 종말적 징조는 종교적 미혹입니다. 종말에는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중의 첫 번째는 종교적 미혹다시 말해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이 땅에 출현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도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음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이단 종교와 적그리스도가 있습니까? 자칭 하나님, 자칭 예수님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이단 종교의 지도자들! 그뿐만 아니라, 정통 기독교 목회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마치 신()인 것처럼 성도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목사님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부산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교회 안에서 수년 동안 부교역자들을 폭행하고 폭언한 일이 드러나 결국 사임을 하고 말았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교회 안에서 이러한 부정과 부패가 드러나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오히려 힘으로 눌러 무마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일어날 종말적 징조는 국가 간의 전쟁입니다. 전쟁은 일상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려 이 세상을 혼돈에 빠뜨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되고 신뢰가 사라지고 바르게 살려는 이들이 오히려 더 큰 환란을 당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보다 주변국들이 더 큰 피해를 봅니다. 지금도 세계가 전쟁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향하는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은 이처럼 그치지 않습니다. 종족 간의 전쟁, 국가 간의 전쟁, 민족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이 없었던 날은 불과 며칠이 안 된다고 하는 말처럼 가장 대표적인 종말적 징조 중의 하나는 국가 간의 전쟁입니다.

     

    세 번째로 일어날 종말적 징조는 천재지변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는 기후 위기로 인한 천재지변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며, 싱크홀, 온난화 그리고 쓰나미와 수많은 지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지진의 피해가 크지는 않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화재와 장마와 가뭄, 홍수의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 점점 더 천재지변이 많아지고 강해지고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 현상도 천재지변 중의 하나입니다. 언제 또 코로나가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인재(人災)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과거 휴거(携擧 예수가 재림할 때, 구원받은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를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처럼 교회 안에 모여 기도하며 종말을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서 다음 세 가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난리의 소문을 듣고 당황하며 흥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꺼진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워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복음 2410~12)’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꺼진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워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럴 때 해야 할 것은 인내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13)’ 인내는 사랑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기본 덕목입니다. 인내의 정점은 끝에 있습니다. 아무리 인내를 잘해도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면 인내하고, 인내하면 구원받습니다. 지금부터 인내를 훈련하십시오.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현장은 인내의 훈련장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인내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전도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오늘의 본문 서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어느 때에 종말이 오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사랑하고 인내하고 전도하면 그때 종말이 온다!” , ‘전도가 종말의 키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인내는 무조건 참는 시간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는 것은 고행입니다. 다른 종교의 고행과 기독교의 인내가 다른 점은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말은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할 유보(留保)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하므로 오늘도 예수님의 재림은 지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종말의 때에 더 사랑하고 인내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말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깨워주시고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악한 종말의 때에 당황하고 흥분하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고 인내하고 전도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B.C(Before Christ의 약자) ‘예수 출생 전이라는 뜻이며 기원전이라는 말입니다.

    *** A.D(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 ‘주님의 해라는 뜻으로 서기라는 말입니다.

    *** 현재는 서기 2026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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