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3월 26일(목)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마 26:14~25)
    2026-03-25 15:04:3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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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말하였도다. (마태복음 2614~25)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잘 주무셨습니까? 오늘은 326일 목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614절부터 25절까지입니다.

     

    모두가 기뻐할 때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찬송을 부를 때 찬송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기도할 때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제 그 은혜의 현장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죽음의 향기를 생명의 향기로 변화시키는 그 은혜의 현장에서도 도리어 반발심과 거부감을 느낀 채 밖으로 뛰쳐나간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그 성스럽고 엄숙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죽음의 모의에 동참했습니다. 오히려 이 향유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태복음 2614~16)’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모두가 기뻐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모두가 찬송할 때 찬송하지 못하고 도리어 강한 적대심과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년(長年)의 모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간혹 학생부 모임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위 말하는 불량 학생, 사고뭉치, 말썽꾼들입니다. 차라리 교회에 나오지나 말 것을 왜 나와서 물을 흐리는가? 왜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내쫓아서 교회에 발 못 붙이도록 혼쭐을 내줘야 할까요? 아니면 이런 학생들에게도 끝없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품어야 할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도 끝없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베풀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따르면,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하고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6)’ 비록 예수님처럼 배반당할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사랑하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 죽음이 임박한 목요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더욱더 침착하게 죽음 앞으로 한 발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주도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 유월절을 어떻게 준비할까요? 무엇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냥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지금 내가 유월절 준비할 때냐? 내가 지금 밥이 넘어가겠냐!”라고 말씀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유월절을 준비하십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예수님은 이미 유월절 식사를 오래전부터 예약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마태복음 2617~1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 등장하는 장소는 일반적으로 마가 요한의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 요한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 최초의 교회, 제자들이 처음으로 성령을 받았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자 마태는 그 이름을 비공개로 표현합니다. ‘아무라는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집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름이 공개되었을 때, 자칫하면 그가 피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에게 선행을 베푼 가족에 대한 성경의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유월절 식탁이 마련되고 모든 제자가 함께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정말로 그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근사하고 풍성한 식사를 제자들이 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이 마지막 식탁은 그 어느 때의 식사보다 장엄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21)’ 그러자 제자들이 몹시 근심하며 되묻습니다.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태복음 2622)’ 왜 그들은 몹시 근심했을까요? 이전처럼 자신 있게 나는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그들은 근심했을까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도리어 되물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을 예수님에게 되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23)’ 그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 중의 한 사람,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 중의 한 사람,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이미 말씀드렸었지요.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일지라도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재밌는 것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기자 마태는 가룟 유다와 다른 여러 제자를 최대한 구분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14절을 볼 때에는 그냥 가룟 유다라고 하지 않고, ‘가룟 유다라고 하는 자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룟 유다에 대한 경멸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이 무려 열한 번씩이나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고 부르는 데 반하여 주님, 나입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향하여 절대로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랍비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이것이 바로 유다의 영적인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은 단 한 번도 예수님을 향하여 랍비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는 가룟 유다가 12명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단 한 번도 참 제자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내리신 저주는 그 어떤 저주보다 강력했습니다.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겠다! 차라리 너는 무로 돌아가라!” 겨우 은 삼십에 스승을 팔려는 가룟 유다의 모습에 대해서 예수님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또 어떤 이들은 신학적인 이유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정치적인 견해, 신학적인 견해가 달랐기 때문에 실망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딱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룟 유다는 오직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았다!’

     

    결론적으로 마태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가 아닌가는 그 사람의 평소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의 모든 언행이 우리와 달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평상시의 말투, 평상시의 관심, 이 작은 언행의 차이가 결국 인생 전체의 차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깨워주시고 주의 말씀을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작은 언행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올바른 일에 관심을 보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성실하게 섬길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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