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길-둘째 날
거룩한 길 (마태복음 22장 15~22절)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2025년 4월 15일 화요일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둘째 날입니다.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22장 15절부터 22절까지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말처럼 정답을 고를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난감한 경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이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이 목사님을 모시기 전부터 교인들 간에 큰 갈등으로 인하여 두 편으로 나뉜 상태였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은 이쪽 편도 들 수 없고 저쪽 편도 들 수 없는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이쪽 편을 들었다가는 저쪽에서 난리가 나고, 저쪽 편을 들었다가는 이쪽에서 난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무엇이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을 결정해도 오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사님은 양쪽 편 모두 미움을 받고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현재 많은 교회가 이러한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우리 청파동교회는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기에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각 교회로 새로 부임하는 목사님들은 이러한 교회의 갈등을 지혜롭게 잘 해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제가 재밌는 추리 문제 하나를 내겠습니다. 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천국에 사는 천사와 지옥에 사는 악마를 만났습니다. 천사와 악마는 그 사람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천사는 소원을 말한 그대로 들어주고 악마는 그 소원을 정반대로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또 소원은 천사와 악마 모두에게 동시에 외쳐야 해서 단 하나의 소원을 한 번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과연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요? 단, 하늘나라에는 천국과 지옥만 존재합니다. 정답은 무엇일까요? 시간 관계상 바로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답은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게 해 주세요’입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게 해 주세요.”라고 답하면, 천사는 말한 그대로 소원을 들어주므로 그 사람을 천국에서 살게 할 것입니다. 또한 악마는 소원을 정반대로 들어주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옥이 아닌 정반대의 천국에서 살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나옵니다.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 말씀이지요. 대체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 말씀으로 작년 6월 23일에 설교를 했었는데, 기억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한 번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에 관해서는 모두 세 가지의 해석이 존재하는 데, 첫 번째 해석은 ‘말장난’이라는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난관을 벗어나시기 위해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정교분리’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라는 해석입니다.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분리하라! 그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이렇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종교인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정치인들도 종교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나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때로는 교회가 이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사명도 감당해야 하므로,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만약 우리가 가이사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가이사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가이사는 오늘날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행정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것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다면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정부를 통해서, 국가를 통해서, 기업을 통해서 은혜를 입었다면 정부와 국가와 기업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라는 말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에게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부 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한 가지라도 있을까요? 없습니다. 즉,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재능, 우리의 호흡, 우리의 인생,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것은 산타할아버지에게 돌려드리십시오. 외할머니에게 받은 것은 외할머니에게 돌려드리십시오. 부모에게 받은 것은 부모에게, 친구에게 받은 친구에게 돌려드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리십시오. 받은 것이 많을수록 돌려드릴 것도 많을 것입니다.
오늘, 이 내용에 딱 맞는 성경 구절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서 11장 36절 말씀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나왔고, 모든 것이 주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절은 욥기 1장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받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전부가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재능, 우리의 호흡, 우리의 인생, 모두 되돌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향유 옥합 여인처럼 전심으로 돕게 하옵소서. 기왕 돕는 것 아낌없이 돕게 하옵소서.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는 인생 되도록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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