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땅을 받아도 (여호수아 16장 1~10절)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6장 1절부터 10절까지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무리 좋은 땅을 받아도’입니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좋은 땅을 받아도 믿음으로 개척하지 않으면 그 기업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입니다. 지난주 설교 말씀처럼 요셉 지파는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가나안의 중부 지역, 젖과 꿀이 흐르는 금싸라기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강남 용산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에게 적은 땅을 주느냐! 저 험악한 산지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다. 우리는 손안대로 코 풀고 싶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여호수아 15장에 나오는 갈렙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5장과 16장의 내용을 하나의 표로 만들어서 비교 대조해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머릿속으로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에는 여호수아 15장, 오른쪽에는 여호수아 16장이라고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은 유다 지파가 될 것이고, 오른쪽은 요셉 지파가 될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지도자는 갈렙이고, 요셉 지파의 지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교만이 더욱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가나안의 남부 지역을 유산으로 받았고, 요셉 지파는 가나안의 중부와 북부 지역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은 산지와 광야가 많은 열악한 지역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감사했고, 요셉 지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노른자 땅을 받았지만, 그들은 결코,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여호수아 15장에는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의 경계가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15개의 성읍, 아니 122개의 성읍과 그 마을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 16장에 나오는 요셉 지파가 받은 땅의 경계는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은 비록 열악하고 험하고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땅이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하여 그 땅을 기름진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 지파가 받은 땅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최고급 땅이었음에도 불순종하며 원망하며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나머지 그렇게 좋은 땅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은 아주 소상하게 기록한 것이고, 요셉 지파가 받은 땅은 아주 간단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처음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처음 된다!’ 여기에서도 역전의 원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즉,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최고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중히 돌아보고 아끼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 없이 감사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최고의 것이라고 믿고, 적극적으로 고난을 맞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이든지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어쩔 수 없이 고난을 맞이하시겠습니까? 어차피 하게 될 고생, 적극적으로 맞이하면 칭찬받고 상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면 혼나고 벌 받고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무리 좋은 땅을 받아도 믿음으로 개척하지 않으면 그 기업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입니다. 이 교훈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언제나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녀들과 단둘이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눈물의 교육은 훗날 존 웨슬리를 통하여 영국의 영적 각성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셉 역시 그 신앙의 열매가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했던 약속이 오늘 드디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자녀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결코 부동산이나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풍성한 물질이 아니라, 결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 유산은 풍성하게 남겨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유산은 부족하게 남겨주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헝그리정신(빈곤하고 굶주린 상태와 같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듯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자세)’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어떻게 그 나이에도 아낙 자손의 거인들과 1:3으로 싸우고, 그들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삶의 고난, 결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넘어야 할 과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셉 지파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고 그들의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이유는 너무나 좋은 유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의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불행이 있고, 불행의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행복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행복인데, 그 내면은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물질적 풍요입니다. 어릴 적부터 부족함이 살아온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려운 형편에서도 부모와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고 살았던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호랑이 굴에서도 산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올바른 신앙을 물려줄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유산을 상속할 수 있는 영적 부모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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