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11월 28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여호수아 10장 1~14절)
    2025-11-27 21:42:0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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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유 (여호수아 101~14)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4)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1128일 금요일입니다.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오늘도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0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 1014절 개역개정 성경)’ ‘그렇게 여호와께서 사람의 말을 들어주신 날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서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014절 우리말 성경)’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에서 싸우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들어주셨을까요? 뭐가 예뻤길래, 어떤 모습에 감동받으셨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신 것일까요?

     

    하나님도 무조건 우리의 편을 들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죄는 멸망에 이르게 하고 순종은 성공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 전투와 아이 성 전투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리에 따라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이라고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순종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고 가르칩니다. , 이웃사랑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앞서 보이는 형제를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취준생이 중요한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차가 정차했을 때, 어느 할아버지께서 그 차에 탑승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차가 택시인 줄 알고 탑승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청년에게 000 한의원으로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딘가 아파 보이는 할아버지를 보며, 청년은 어쩔 수 없이 그 한의원을 찾아 동네를 헤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할아버지는 뇌졸중 1급 환자라는 표기와 함께 집주소가 적혀 있는 목걸이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할아버지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린 뒤에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시험에 무려 30분이나 지각을 했다고 합니다. 1965, 육군 대위로 재직하던 강재구 소령은 부하들이 훈련 도중 수류탄을 소대원들 앞에 떨어뜨리자 몸을 던져 수류탄을 덮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희생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본인은 순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이러한 선행을 할 수 있을까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언 1421) 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리라네 손을 넓게 펼지니라(신명기 1511)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누가복음 1036~37)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야고보서 215~17) 너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2) 이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말을 들으시고 해와 달을 멈추셨을까요? 그것은 여호수아가 이웃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여호수아 101~14)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투항한 기브온 백성들을 괘씸하게 여긴 가나안의 다섯 왕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합니다. 이에 기브온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긴급 전갈을 보내 구호(救護)’를 요청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과연 이러한 요청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뒤통수를 친 사람들입니다. 거짓말로 속인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 넘어간 여호수아와 족장들을 몹시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손길에 최선을 다해 응답합니다. 밤새도록 달려와 그들을 도와줍니다. 목숨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때는 여호수아처럼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을지라도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도울 때는 전심으로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영적인 원리입니다. 원수가 고난을 겪을 때 손뼉 치며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도와주고 그의 생명을 건져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수고할 때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를 도우면, 주가 도우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힘을 주시고, 우박으로 적들을 치시고, 하늘의 태양과 달이 멈추는 기적까지 베푸셨을까요? 그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힘이 없고 연약한 이웃을 도우면, 하나님은 그런 나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만 잘 먹고 잘살고 이웃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도 그런 나에게 무관심으로 대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내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족이나 형제, 교우들 가운데 고난 중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엊그제 구역장님 한 분께서 구역 식구 가운데 고난 중에 있는 찾아 교구 목사님과 함께 가정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현재 그분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아픈 상태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매우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 교회 오랫동안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변에 있는 어려운 분들을 찾아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구체적으로 돕는 방법도 찾게 될 것입니다. 내가 힘이 없고 연약한 이웃을 도우면, 하나님은 그런 나를 도우십니다.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인 줄 믿습니다. 힘을 다하여 이웃을 돕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도울 때는 아까워 말고 최선을 다해 돕게 하옵소서. 오늘과 내일 교회에서 김장합니다. 바쁜 시간, 시간을 내어 헌신하는 모든 성도를 칭찬하여 주시옵소서. 다치지 않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잘 마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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