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11월 15일(토)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여호수아 4장 1~9절)
    2025-11-14 14:11:28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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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하시매 (여호수아 41~9)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휘관이 되셔서 이스라엘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며 애굽에서 탈출하였고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 이제 실전에 투입되기 직전에 놓여있습니다. 그 실전이란 무엇입니까? 터줏대감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그곳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전쟁 경험도 없고 가나안을 이길 실력도 없으며 든든한 지도자 모세도 죽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곤 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차기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는 이 상황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요?

     

    오늘의 본문(여호수아 41~9)은 요단강을 건너던 이야기의 절정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가나안 첫 야영지에 열두 개의 돌로 세운 기념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요단강을 건넌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깁니다. 그런데 본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념석 외에 여호수아가 따로 세운 기념석이 또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대표들에게 명령하신 내용, 여호수아 42~3절입니다.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오래도록 기념해야 할 소중한 기억을 위한 돌이니, 각 지파의 대표들은 자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크고 멋진 돌을 골랐을 것입니다. 대표들은 기념석을 하나씩 골라 자기들의 야영지에 가져다 둡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따로 또, 언약궤가 머물렀던 강 중앙에다가 추가로 열두 돌을 세웁니다. 여호수아 49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지금은 잠시 요단강물의 흐름이 멈춰서 강바닥이 보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강을 다 건너면 물은 다시 흐를 것이고 물이 덮이면 여호수아가 따로 세운 열두 돌은 물에 잠겨 보이지도 않을 텐데 여호수아는 왜 이런 수고를 했을까요? 책임감과 부담이 큰 만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해 봅니다.

     

    요단강 한가운데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머문 자리, 하나님 임재(臨在)’의 자리입니다. 가장 거룩한 그 자리에 여호수아는 따로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고,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 여호수아와도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겠다는 각오일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정복해야 하는 큰 임무를 떠안게 된 여호수아입니다. 마음의 큰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고 여호수아는 하나님 임재의 자리를 찾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지 여호수아 414절이 보여줍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커 보이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이끌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그가 실제보다 더 훌륭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여호수아의 능력이 갑자기 출중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영적인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 삶을 맡기고 순종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십니다.’

     

    우리 각자 마주하고 있는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실력의 문제, 관계의 문제,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의 문제.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리면 주님이 나를 크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커 보이게 해주시면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나의 영향력이 커지고, 사랑과 응원과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은 내 능력, 내 실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나를 커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가나안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영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로 잘 이끌어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 교회가 커지길 바라십니까? 우리 동네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길 바라십니까? 무엇을 위해 커지고 영향력 끼치길 바라는지 오늘 말씀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으로 삶으로 사역으로 자신의 신적 권위를 보여주셨습니다. 한 가지 목적,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의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신 목적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웃들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크게 하시는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커지는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한 삶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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