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11월 20일(목)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여호수아 6장 15~27절)
    2025-11-19 10:59:1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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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키기 어려운 명령 세 가지 (여호수아 615~27)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1120일 목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615절부터 27절까지입니다. 우리가 만약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었다면, 우리가 만약 여호수아와 함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는 <침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수아 610)’ 100명도 아니고, 1,000명도 아닌 200만 명의 대군이 6일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성을 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었을 것입니다. 6일 동안 성을 돌면서 그들은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성 주변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수 있는가?! 살다 살다 이런 이야기는 첨 들어본다.” 말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이렇게 불신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뢰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그들은 6일 동안 성을 돌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면 무슨 일이 났어도 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묵은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침묵의 중요성을 아는 자가 영성이 깊은 사람입니다. 왜 수도원에 들어가면 침묵부터 가르치겠습니까? 침묵할 줄을 알아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말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합니다. 자기도 말을 그만하고 싶지만, 뇌가 그것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셨을까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침묵하지 않고서는 신앙 생활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곧 침묵의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말은 줄어들고 기도는 늘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그 반대가 아닌지 한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승리의 그날에 외칠 함성을 위해 지금은 침묵하십시오. 지금 소리치는 사람이 승자가 아니라 마지막 날에 외치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여호수아 620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두 번째,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라합과 그의 가족을 구출하라>는 명령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라합 가족 특별 구출 작전입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여호수아 617)’ 오늘 본문에는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을 반드시 구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무려 네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617·22·23·25절이 라합의 구원에 관련된 구절입니다. , 어떻게 하면 여리고 성을 잘 무너뜨릴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을 보다 더 잘 구원할 것인가에 대해서 본문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오늘 본문(여호수아 615~27)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멸망 당했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부분을 영화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아마도 감독은 이 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거기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중점으로 표현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라합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붉은 줄입니다. 창문에 노란 줄이나 파란 줄이 아니라 반드시 붉은 줄을 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반드시, 라합의 집안에 거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라합과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집 밖을 떠나 거리를 배회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이 모든 비밀을 철저하게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누설하면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정탐꾼들과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것도 구두 약속이 아니라, 법적 효력이 있는 헤세드의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여리고 성의 사람들을 진멸하되 반드시,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살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그들까지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그들의 희생을 묵인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 그까짓 거! 잊어버릴 수도 있지! 이 큰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정말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을 진멸할 때, 라합과 그의 가족들만 살려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더욱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절대 실수하지 말아라!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세 번째는 여리고 성의 모든 물건을 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여호수아 618~19)’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진귀한 물건을 발견했더라도 그것을 불에 태우거나 하나님의 곳간에 넣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것이 은금과 동철 기구라면 하나님께 바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에 태워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어긴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간입니다. 아간은 시날산의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을 몰래 취했습니다. 지금 말하면 명품 가방이나 고급 자동차, 값비싼 귀금속들을 몰래 감춘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아간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욕심이 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든지 값비싼 물건을 보거나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충동구매죠.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주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보였습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습니다. 매우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취하는 순간,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입니다. 카페에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두어도 가져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잃어버린 물건 웬만하면 다 찾습니다. CCTV가 발달해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눈뜨고도 코 베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식으로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자동차 안에 있는 물건도 도난당한다고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입니다. 자기 절제 없이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최고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없는 것을 구하지 않는 것!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 오늘도 주안에서 자족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지금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 절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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