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11월 19일(수)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여호수아 6장 1~14절)
    2025-11-18 11:51:5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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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빼는 연습 (여호수아 61~14)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1119일 수요일입니다.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상 안전과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두르면 다치기 쉬우니 항상 여유를 가지고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6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신앙생활은 힘 빼는 생활입니다. 여러분, 운동 배울 때 어떻게 합니까? 힘 빼는 연습을 합니다. 힘을 꼭 주어야 하는 곳에만 힘을 주고 불필요한 곳에 들어가는 힘은 빼야 합니다. 간혹 운동하고 나서 몸이 아픈 경우는 힘을 잘못 사용해서 그런 것입니다. 특히 어깨에 들어가는 힘은 최대한 빼야 합니다. 만약 팔운동 하면서 어깨와 목에 힘을 주면 크게 다칩니다. 한동안 병원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든 운동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어깨 힘주고 다니는 사람치고 끝까지 가는 사람 없습니다. 진짜 잘하는 사람은 온몸이 유연하고 부드럽습니다. 힘을 뺏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여호수아 61~14)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 첫 번째로 승리한 여리고 성 사건에 관하여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6일을 돌고 마지막 7일째에는 일곱 번을 돌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로 하여금 성을 돌게 하셨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사찰이나 절 주위를 일곱 번씩 돌기도 합니다. 또한 자기가 원하는 갖고 싶은 어떤 대상을 일곱 번씩 돌기도 합니다. 서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대학을 일곱 번 돌았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완전히 잘못된 성경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그렇게 돌았을까요?

     

    여리고 성은 가나안땅에서 가장 큰 성입니다. 그 넓은 성을 한 번만 돌아도 힘이 다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매일,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이나 돌았습니다. 일곱 번을 돌고도 전쟁할 기운이 남아 있었을까요? 없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혈기와 능력과 실력으로 여리고 성에 들어가지 않도록, 사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뺀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흥분해서 자기 멋대로 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앞에서 아무리 지휘하고 인도해도 거기에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 나타날까요? 힘이 다 빠졌을 때 나타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부름을 받은 것은 80세였습니다. 지금도 80세면 연로한 나이지만 당시의 80세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시편 9010절 말씀입니다. 모세의 고백입니다. 모세가 자기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며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하지만 간혹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계라는 영화를 보면, 모세 역으로 찰턴 헤스턴이라는 배우가 나오는데, 그는 신장이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라고 하면 그런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모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일반적인 노인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지금의 나이가 80세가 넘었을 것이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93세 정도야곱이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을 때의 나이도 대략 80세로 봅니다. 청년 야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론도 83세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미리암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갈렙도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여호수아 1410절 후반~11절 전반)’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80세쯤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요한복음 2118절 말씀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베드로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젊었을 때는 자기 뜻대로 살았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사람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살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종(하인)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종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그 종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이 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종이 있다면 그 종은 매우 미숙한 종일 것입니다. 아직 사춘기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 성숙한 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원하는 것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의 뜻을 주장하는 사람은 철없는 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과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오래되면 될수록 더 높아지고 더 대우받고 더 인정을 받지만, 교회는 오래되면 될수록 더 낮아지고 더 내려놔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지고 불편해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편안하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편안하다면 누군가가 대신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쩍벌(공공장소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자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쩍벌 하면 나는 편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몹시 불편해집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입니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삶입니다. 거룩한 삶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누군가가 불편함을 겪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오늘 설교의 제목은 <힘 빼는 연습>입니다. 불필요한 곳에 들어간 힘을 빼고 꼭 힘을 주어야 하는 곳에만 힘을 줄 수 있는 성숙한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행여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여 미숙하게 행동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이제는 그런 삶으로부터 돌이키게 하옵소서.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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