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13일(토)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15:12~19)
    2026-06-12 16:32:1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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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쌍한 사람은 누구인가? (고린도전서 1512~19)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1. 한국의 대중가요 케이팝이 세계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 디엔에이(DNA)’라는 노래의 작사에 참여하고 개막식에서 직접 부른 가수가 한국인 이재(EJAE)입니다. 가사는 대부분 영어이지만, 곡 중간에 한국어 가사가 나와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 가사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 넘어져도 나 다시 일어나참 좋은 가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가사를 들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단순한 의지만으로 됩니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됩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그 답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2.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활장(復活章)’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부활을 부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거나 단지 신앙의 방식이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천국의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며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거 자체가 무너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위기를 직시하며 오늘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3. 그렇다면 왜 부활이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근거가 될까요?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일어서려면 붙잡고 일어날 수 있는 견고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에서는 그것을 반석이라고 자주 언급합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우리에게 바로 반석과 같습니다. 어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부활은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뿐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증언되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고린도전서 158).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이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붙들어 줍니다.

     

    4.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 사함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17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죄책감입니다. 반복적인 실패, 과거의 실수, 부끄러운 기억들이 우리를 깊은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장에 나온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다 탕진하고 망했을 때, 만약 자신의 실패와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죄책감만 가졌다면 나 같은 사람이 무슨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는 영원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왔습니다. 자기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지만 아버지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증거이며,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의로움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지 못했다는 것은, 죄도 더 이상 우리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와 반복적인 실패로 인한 무거운 죄책감에 일어서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십시오.

     

    5.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세 번째 근거는 우리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사람들은 건강, , 명예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지만 이 삶의 조건이 무너질 때 삶의 근간(根幹) 자체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그것들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건강도, 사회적 지위도, 물질도 아무 의미가 없을 때가 찾아옵니다. 이것들이 다 무너지면 이제 오늘을 버틸 힘도 없습니다. 반면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설사 지금 고통이 있거나 현재의 삶이 넉넉하지 못해도 지금의 실패와 좌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바울이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아침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확신, 그 미래의 소망이 쓰러진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6.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세 가지 근거 위에서 바울은 결정적 질문을 던집니다. “불쌍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고린도전서 1519절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불쌍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새벽잠을 줄여가며 이 새벽에 나온 여러분들, 자기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 있는 분들, 잘못한 것이 없어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분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어리석다 불쌍하다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진짜 불쌍한 사람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7. 이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계십니까? 건강의 문제, 관계의 어려움, 경제적인 결핍이 있습니까? 반복되는 죄의 무게로 넘어지셨습니까?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요, 죄 사함의 증거요, 우리를 의롭다 인()을 치시는 하나님의 은혜 사건입니다. 불쌍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예수님을 힘입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하나님,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 우리의 실수로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붙들고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을 믿고 담대하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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