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26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나 1:9~15)
    2026-06-25 13:56:34
    관리자
    조회수   52

    꿈에도 소원 (나훔 19~15)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626일 금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훔 19절부터 15절까지입니다. <꿈에도 소원>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요나가 꿈에라도 반드시 이뤄지기를 원했던 소망은 니느웨가 멸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백년을 더 살아서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자, 성 동쪽에 초막을 짓고 앉아 이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를 끝까지 지켜보며 분노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필생 소원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불타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요나가 정말 백년을 더 살아서 그토록 바라던 결말을 봤다면 어땠을까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기원전 612년 니느웨는 멸망 당했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요나의 열망은 실현된 것입니다. 요나가 활동했던 시기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후, 니느웨는 바벨론과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습니다. 만약 요나가 불로장생하여 그 현장에 있었다면, 자신의 예언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며 격렬한 희열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 4장의 박넝쿨 사건을 떠올려보면, 그의 기쁨이 영원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0~11)’ 백년의 세월 동안 요나가 이 가르침을 곱씹었다면, 막상 니느웨가 피바다가 되어 무너질 때 큰 기쁨 보다는 오히려 지독한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타는 성읍 속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들도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니느웨의 멸망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평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앗수르가 물러간 자리에는 더욱 잔인한 바벨론 제국이 들어섰고, 결국 유다마저 그들에 의해 무참히 멸망했습니다. 그야말로 소나기를 피하려다 폭풍우를 만난 꼴이요, 앞문으로 들어오는 이리를 막으려다 뒷문으로 호랑이를 끌어들인 격입니다. 다시 말해 요나가 백년을 더 살아 니느웨의 파멸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악이 또 다른 악으로 대체되는 역사의 끝없는 잔혹함과 부조리를 보며 더 깊은 탄식을 내뱉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나훔 19~10절 말씀 읽겠습니다.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무슨 의미일까요? 앗수르가 아무리 가시덤불처럼 견고할지라도 마른 지푸라기처럼 순식간에 불태울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은 이제 곧 불태워질 마른 검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나가 살아서 이 예언을 들었다면, 역시 자기 생각이 맞았다며, 격한 공감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11절과 13절 말씀입니다.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여기서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잔혹하게 짓밟았던 인물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증오했던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잔인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이 그의 멍에를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임박한 니느웨의 멸망을 암시합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나훔 114~15절입니다.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나훔은 이제 니느웨를 향해 네 무덤을 준비하겠다라며 완전한 사망 선고를 내립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는 아름다운 소식과 화평이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유다의 처지에서 볼 때는 불행 끝 행복 시작,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행복한 결말뿐입니다. 하지만 나훔서가 선포하는 화평은 안타깝게도 영원한 화평이 아니었습니다. 니느웨의 무덤이 파헤쳐진 자리에 곧바로 바벨론이라는 더 큰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본문 나훔 115절에서 하나님은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역사 속의 유다는 이 화평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합니다. 앗수르가 멸망 당한 후 30년도 채 안 되어 유다도 멸망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오늘의 본문 나훔 19~15절은 요나가 꿈에도 그리며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니느웨의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서 요나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대적의 멸망을 보고 큰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서는 인간이 만든 제국의 허무함과 하나님의 두려운 주권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나훔 19~15)을 통해 다음 세 가지의 메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복수의 기쁨은 찰나이며 그것이 결코 구원을 담보하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복수가 아닌 하나님의 복수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나의 때와 나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인내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자기 성찰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시각에서 니느웨의 파멸만을 울부짖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12만 명의 생명과 가축을 아끼는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복수심에 사로잡혀 우리 자신이 악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 학교마다 공공기관마다 민원이 급증합니다. 어느 기관이든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업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자기가 옳고 정당하다는 지나친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과 가족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며 나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소중합니다. 내가 힘든 만큼 다른 사람도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욕설하고 감정을 쏟아놓으면 그것이 결국 돌고 돌아 나와 내 가족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기 성찰입니다.

     

    3. ‘영원한 권력은 없으며, 모든 역사와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말로만 두려워하지 말고, 진정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복수에 맡기지 못하고 내가 직접 복수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모든 나라가 망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절대 권력자였던 앗수르도 흔적 없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들은 메마른 검불에 불과합니다. 이는 개인이든 거대한 국가든,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말씀의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눈앞의 이익과 감정 때문에 타인을 정죄하고 나만 옳다고 여겼던 영적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