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23일(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욘 3:1~10)
    2026-06-22 16:55:52
    관리자
    조회수   62

    요나의 전도에서 배울 점 (요나 31~10)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623일 화요일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 복된 날입니다.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나 31절부터 10절까지입니다. <요나의 전도에서 배울 점>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믿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업이든, 공부든, 신앙생활이든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냐?”라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됩니다. 과정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어도 성공이라는 열매만 맺으면 모든 허물이 덮어집니다. 반대로 과정에서 아무리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을지라도 결과가 나쁘면 모든 것이 실패로 인식됩니다.

     

    오늘의 본문(요나 31~10)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대박 난 선교 보고서처럼 보입니다. 단 한 사람(요나)의 전도로 인해 당대 최고의 제국이었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뒤집어졌기 때문입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미천한 짐승에 이르기까지 전무후무한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말 그 숫자로만 결과를 평가한다면 요나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추대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위대한 부흥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을 꼼꼼히 읽어보며 그 진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 ‘결과로 과정을 합리화하지 말라! (요나 31~4)’ 본문은 니느웨 성읍이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라고 기록합니다.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려면 최소한 사흘 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단 하루 동안만 복음을 전파합니다. 사흘 동안 가야 하는 길을 하루만 다녔다는 것은 마지못해 억지로 흉내만 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사명 감당했어라는 책임 회피용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대충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전도자라면 하루 동안 가야 할 길도 사흘 동안 다니며 영혼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나가 외친 복음의 내용은 너무나 부실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다섯 단어에 불과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지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습니다. 이것은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멸망을 바라는 저주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마음속으로 너희는 제발 회개하지 말고 그냥 망해라라고 여전히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십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패한 전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한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입니다. 결과라는 우상에 매몰되지 말고 오늘 나에게 맡겨진 하루라는 과정에서 정직함과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주제, ‘진정한 변화는 상향식(上向式) 의사결정을 통해 일어난다! (요나 35~8)’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요나가 대충 전한 그 다섯 마디의 복음을 듣고 니느웨가 뒤집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일반 백성들, 평민들이 반응했습니다. 가장 평범한 일반 백성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왕이 회개합니다. , 니느웨의 종교개혁은 왕이 주도해서 일으킨 종교개혁이 아닙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는 왕의 조서와 왕의 신앙고백이 기록되어 이 모든 것이 왕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뜨거운 회개의 운동이 왕궁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본문 6절과 8절을 자세히 비교해 보십시오. 요나 36절에서 백성들이 이미 행하고 있었던 회개의 모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더욱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 것이 8절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변화와 부흥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하향식의 명령에 의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부가 법을 바꾸고, 교회가 규칙을 만들고, 부모가 자녀를 강제로 윽박지른다고 해서 사람의 중심이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의사결정은 아무리 그 내용이 선하고 좋은 내용일지라도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고 자발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방식도 철저히 상향식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을 포섭하여 권력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갈릴리의 어부들, 가장 소외되고 낮은 자리에 있었던 세리와 죄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사랑의 혁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참된 복음은 자발적입니다. 억지로 하는 순종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 안에서도 억압과 강요가 아닌 진정한 회개와 자발적인 은혜의 소통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제,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라, 그때가 가장 빠른 때다! (요나 39~10)’ 회개의 불길이 온 성읍과 왕궁을 뒤덮었을 때, 니느웨 왕은 매우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던집니다. 당시 요나가 선포한 메시지의 시한은 단 ‘40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는 회개하면 살려주겠다라는 조건부 조항이 전혀 없었습니다. “너희들은 무조건 40일 뒤에 다 죽는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만 있었습니다. ,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면 이것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고 심판의 칼날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마지막 40일 동안 회개하기는커녕 더 많은 쾌락을 즐기다가 죽는 것이 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니느웨 왕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살 수 있고 여전히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니느웨는 완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어떠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 주님을 의지하는 것,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음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자주 체념합니다. 때로는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중고등학생도 이번 시험 망쳤으니 내 인생은 끝났어!”라고 말합니다. 2030대 청년들도 취업의 문턱에서 떨어지면 내 인생은 이미 끝났다라고 낙심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냉혹하고 참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인생에 이미 늦은 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늦었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오늘도 힘차게 다시 일어서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이 우리 인생의 첫날임을 믿습니다. 과거에 묶여 낙심한 교우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내가 포기하는 그 순간이 하나님이 시작하는 순간이며 내가 내려놓는 그 순간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순간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