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시는 하나님 (나훔 1장 1~8절)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6월 25일 목요일입니다. 오늘은 6·25전쟁 발발 제76주년입니다.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나훔 1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나훔서와 요나서는 쌍둥이 같은 책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 두 책은 모두 그 심판의 대상이 ‘니느웨’입니다. 이 두 책 모두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당대 최고의 제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두 책은 모두 그 내용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와 열방을 다스리시는 ‘온 우주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는 책의 구성입니다. 요나서와 나훔서는 각각 4장과 3장에 불과하여 비교적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두 책은 모두 열린 결말, ‘질문’으로 끝을 맺는 책입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일단 예언자가 다릅니다. 요나서의 예언자는 ‘요나’이고, 나훔서의 예언자는 ‘나훔’입니다. 이 두 사람이 사역한 시기에는 약 10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나가 나훔보다 100년 정도 앞선 선배 사역자인 셈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간격 때문에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결말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같은 복음이 선포되었음에도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 백성들은 왕으로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회개하지만, 나훔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요나서의 니느웨 백성들이 용서받은 것과는 달리 나훔서의 니느웨 백성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기원전 612년에 앗수르가 멸망 당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요나서에 강조된 하나님의 성품이 인애(仁愛)와 자비(慈悲)라면 나훔서에 강조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公義)와 정의(正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요나서는 아무리 극악한 원수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고, 나훔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하찮게 여기고 죄악의 길로 가게 되면 누구라도 심판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즉, 이 두 권의 책이 모두 합쳐져서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요나서와 나훔서에는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으니, 여러분들께서도 주의 깊게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본문의 내용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장 1절은 나훔서 전체의 제목으로 일단 넘어가고 2절부터 보시면, 나훔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확연하게 구별됩니다. 1장 2절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조금 전에 제가 나훔서는 어떤 책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나훔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하며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구별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계십니까? 그 고백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즉, 지금 나훔이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분, 진노하시는 분, 보복하시는 분’으로 말하는 것은 지금 나훔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복습해 볼까요? 지금 나훔은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① 질투하시는 하나님 ② 진노하시는 하나님 ③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왜 나훔은 이런 고백을 할까요?
하나님의 질투와 진노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것들은 ‘우상’일 수 있고 ‘권력’일 수도 있으며 ‘돈과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들을 질투하시는 이유는 이것들이 모두 허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와 진노는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하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는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수는 하나님의 약속이 깨어진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수는 수준 낮고 비윤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비해 상당히 후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복수와 하나님의 복수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의 복수는 복수하는 이에게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에 걸려들게 하지만, 하나님의 복수는 억압받는 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참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가 이 시대의 교사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시원한 복수를 하므로 매우 통쾌한 부분도 있지만, 이것이 자칫 인간의 복수로 끝나면, 오히려 악순환만 강화될 뿐입니다. 학생이면 학생, 교사면 교사, 학부모면 학부모, 어느 한쪽만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훔이 하나님이 복수하신다고 선포한 것은 여전히 ‘세상에 정의가 있다! 불의한 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불의가 가득한 상황에서도 그가 굳건하게 정의를 외치고 진리를 위하여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와 복수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인류 최후의 날, 하나님의 날, 예수 재림의 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훔 1장 3절 후반부에 나오는 ‘회오리바람과 광풍’은 장차 하나님께서 행하실 복수가 얼마나 거세고 강력하게 밀어닥칠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거센 회오리바람과 광풍처럼 임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4절부터 등장하는 자연 세계의 모습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나훔 1장 4절)’ 여러분, 출애굽 사건과 홍해가 갈라지고 강물이 마른 것들이 생각나십니까?. 하지만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을 조롱하며 자기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런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강을 마르게 하시니, 그토록 비옥했던 땅들도 모두 시들어 버립니다. 4절 후반부에 나오는 ‘바산’과 ‘갈멜’과 ‘레바론’이 바로 그 땅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아무리 풍요한 나라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시들어 버리고 메말라 버립니다.
나훔 1장 5절은 지각변동입니다. 더욱더 강도 높은 심판의 모습입니다. 산들이 진동하고 작은 산들이 녹아내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지진이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무서운 천재지변입니까? 이처럼 나훔서는 땅을 흔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앗수르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6절은 결론입니다. ‘누가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설 수 있으랴! 누가 이러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견딜 수 있으랴!’ 아무도 설 수 없고,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두 구절 나훔 1장 7절과 8절은 하나님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분께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여호와는 선하므로 누구라도 환난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그의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7절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면, 8절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잠시 멈추었던 홍해가 다시 흘러 애굽의 군사들을 수장시킨 것처럼 범람하는 물로써 모든 대적들을 끝장낼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묵상입니다. 여러분, 누구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분, 진노하시는 분, 질투하시는 분이라고 나훔 선지자가 선포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과 역사를 믿으며 오늘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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