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15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15:29~34)
    2026-06-14 18:27:1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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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 의를 행하고 (고린도전서 1529~34)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復活章)의 네 번째 문단으로서 바울 사도는 부활이 우리의 삶과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믿음의 행동이 전부 부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흐려지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부활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행하는 모든 믿음의 행동과 선택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어찌 그렇게 행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29절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아멘)

     

    또한 바울 사도는 에베소에서 경험했던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믿음의 근간에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32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아멘)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은 맹수와 싸워야 하는 형벌을 당할 수 없기에 맹수와 싸웠다라는 32절의 표현을 두고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바울의 비유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맹수와 싸우는 것 같이 죽음에 가까워진 위협과 인생의 위기를 사람의 방법으로 헤쳐 나가지 않고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헤쳐 나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을 말하고 난 뒤에 바울 사도는 사단의 속임수에 대한 경고를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주의시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33, 34절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아멘) 바울 사도는 교회 안에 있는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그들이 말하는 주장에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잘못된 주장들을 멀리하고 그것 때문에 순결한 성도의 모습을 잃지 말라고 말하며 더불어 언제나 깨어있어 의를 행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고린도전서 1529~34)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과 부활 신앙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하는 바울 사도의 변증(辨證)입니다.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왜곡하고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마찬가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왜곡하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오히려 논리적으로 부활을 증명하였으며 삶에서의 행함으로 부활의 증거(證據)를 변증하였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534절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그노시안은 단순히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을 왜곡하고 하나님을 잘못 전파하는 이단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이 이단의 정체는 그 당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영지주의 이단들이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들은 부활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예수님과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영지주의적 색깔을 입히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영지주의적 색깔에 영향을 받은 자들을 향해 따끔한 경고와 그들을 부끄럽게 하여 다시 돌아오기를 바울 사도는 권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부활 신앙에 대한 확신입니다. 바울 시대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의 바탕에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예수님께서 죄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부활의 확신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온다 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 나를 짓누르는 고난과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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