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6월 19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16:13~24)
    2026-06-18 18:58:47
    관리자
    조회수   62

    오직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1613~24)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619일 금요일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613절부터 24절까지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행하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은혜 많이 받으셨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파당을 만들었고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음행을 저지르며 법정에서 서로를 고발하는 송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며 예배를 무질서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아마도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같았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 골칫덩어리들! 이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며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고린도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고귀한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고린도전서 1613~24)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동안 온갖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던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권면을 쏟아냅니다. 이 마지막 권면을 통해, 우리 청파동 교회가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첫 번째 권면은 성숙한 신앙인이 되십시오입니다(고린도전서 1613~14).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며 가장 먼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영적인 군사처럼 깨어 있을 것을 명령합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내리는 단호한 명령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숙한 어른이 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린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작은 일에도 쉽게 삐치고, 자기가 잘났다고 서로 자랑하고, 모든 삶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고 내가 힘들면 힘든 것입니다. 식당의 음식도 내 입맛에 맞추어야 하고 예배당의 실내 온도도 내 몸의 상태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딱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자신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시기 질투하며 분쟁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싸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철부지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제 그런 아이들의 일을 버리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권면은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이들을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615~18).

    바울은 그동안 고린도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이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언급한 그 세 사람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참 낯선 이름들입니다. 베드로나 요한처럼 기적을 행한 사람들도 아니고 바울처럼 위대한 설교가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부르며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사람들이라고 칭찬합니다. 특히 스데바나라는 이름은 오늘 두 번 나옵니다. 이렇게 짧은 본문 안에 이름이 두 번씩이나 등장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바나의 집안은 고린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믿은 첫 번째 열매의 가정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창립 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은, 신앙의 선배로서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것입니다. 손님을 대접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일에 자신들의 전부를 던졌습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있지만, 그중에는 화려하게 드러나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드러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분들이 더 많다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주차장은 몸이 불편한 분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차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청파초등학교에 주차하려고 노력하는 분들, 이렇게 무더운 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차 안내를 하시는 분들, 주방의 산더미 같은 식판을 닦는 봉사자들과 음식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이 있고, 예배 안내를 위한 최소 1시간 전에 나오시는 분들, 교사와 찬양대를 위해 한 주간 마음 졸이며 준비하시는 분들, 무엇보다 교회가 평안하도록 골방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고린도전서 1618)’ 여기서 알아주라라는 것은, 세상의 명예를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격려하고, 그들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주위의 스데바나는 누구입니까? 아무리 작은 섬김이라도 당연한 섬김은 없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그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권면은 끊임없이 서로 격려하고, 문안(問安)하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629~24).

    마지막으로 바울은 수많은 사람의 안부를 전하며 서로 뜨겁게 문안할 것을 당부합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문안이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문안 인사 잘하고 계십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끼리 서로 문안 인사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웃들과도 문안 인사를 하고, 우리 성도들은 새벽기도와 아침 말씀 묵상을 나누며, 문안합니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교우가 있거나 위중한 수술을 앞둔 교우가 있다면, 우리는 119기도를 합니다. 또한 장례를 당하거나 병중에 있는 교우들의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달려갑니다. 교회는 동아리 모임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익집단도 아닙니다. 우리 모든 교우는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과 정치적 성향도 다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과 교회를 나누는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아주 무서운 경고와 함께 저주를 내립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린도전서 1622)’ 주님을 사랑하고 축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거부하고 저주를 받을 것인가? 당연히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은 바로 그 유명한 마라나 타(Marana tha)’입니다. 과거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곧 주님이 다시 오신다!”라는 재림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왜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라나 타를 언급할까요?

     

    지금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싸우고 파당을 짓고 서로 자랑하고 욕심부리는 이유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재림 신앙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일 주님이 오신다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형제와 자매를 미워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일 주님이 오신다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욕심부리며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용서할 것입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선한 일을 할 것입니다. , ‘마라나 타의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할지어다(고린도전서 1624)’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비록 고린도 교회처럼 문제가 많을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랑으로 승리하는 저와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적 어린아이의 삶을 버리고 대장부처럼 강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과 땀으로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들의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마라나 타의 신앙으로 형제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청파동의 모든 교우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