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핍박 중에도 (시편 119편 137~152절)
(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9월 10일 목요일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기쁘고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편 137절부터 152절까지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신앙은 언제 그 진가가 드러날까요? 신앙은 언제 그 가치가 나타날까요? 방금 고백한 찬송가 336장의 가사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시편 119편의 기자는 깊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억울하게 박해를 받는 모습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와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다고 고백합니다. ‘(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시편 119편 137~138절)’
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때는 날씨가 맑아도 기쁘고 흐려도 기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 되고, 일이 꼬인 사람은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힘들고 흐리면 흐려서 힘듭니다. 무슨 말입니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롭다고 고백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즉, 오늘 본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신앙의 내공이 매우 깊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그러한 신앙의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잠시 잠깐은 흔들릴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시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시편 119편 139절입니다. ‘내 대적(對敵)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시인은 지금 주의 말씀을 잊어버린 대적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 보십시오. 그 어디에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동의하기는커녕 오히려 조롱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꿋꿋이 말씀을 향한 열정을 품고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련을 통해 그의 신앙은 불로 연단 된 금처럼 더욱 순수해집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19편 140절)’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시인은 대적들에게 멸시받는 상황에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여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내가 미천(微賤)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119편 141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일입니다. 차라리 비난받을지언정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편이 더 낫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기의 능력을 보여줄 겨를도 없이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씁쓸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잊힐지라도 주의 법만큼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시인은 또다시 하나님의 정의를 언급합니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시편 119편 142절)’ 자신의 삶이 바닥까지 떨어졌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옳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러한 선포를 바탕으로 시인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다시 돌아봅니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편 119편 143절)’
앞서 시편 119편의 시인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경지에 오른 신앙의 달인이자, 깊은 신앙의 내공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다음 구절에서 다시 한번 더 드러납니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시편 119편 144절)’
어떻게 환란과 우환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을까요? ‘환난은 잠시일 뿐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라는 사실을 그가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환난과 우환이 가져다주는 좌절과 절망 앞에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본문은 말씀을 향한 시인의 자세와 시인이 처한 고난의 상황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시편 119편 138절, 140절, 142절은 말씀을 향한 시인의 자세를, 139절, 141절, 143절은 지금 시인이 처한 고난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대조적 구조는 시인이 지금 얼마나 치열한 영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깊은 신앙의 경지에 오른 달인이라 할지라도 고난을 쉽게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매 순간 치열하게 싸웠기에 마침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에는 ‘한 번에 도달하는 경지’란 없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사람이라도 넘어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여러분, ‘살 빼기’가 왜 힘들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한순간에, 너무 쉽게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잘 참아냅니다. 하지만 밤 10시가 넘어가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과자 하나쯤이야’하고 입에 대는 순간, 그것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치킨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어 치우게 됩니다. 처음의 그 작은 유혹 하나를 참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지게 됩니다. 영적인 싸움 역시 이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는 ‘악이 가까이 있는 곳에 주님도 가까이 계신다’라는 내용입니다. 마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먼저 시인은 시편 119편 145절과 146절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시인은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편 119편 147~148절)’ 날이 밝기 전, 동이 트기도 전에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할 만큼, 시인의 말씀과 기도를 향한 열정은 뜨거웠습니다. 그만큼 자신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살려달라고 절규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시편 119편 149절)’ 대체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었기에, 시인은 이토록 처절하게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는 것일까요?
그러나 시인이 얻은 응답은 참으로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편 119편 150~151절) 자신을 괴롭히는 악인들도 가까이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구원하실 하나님 역시 가까이 계심을 그가 비로소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은 무엇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시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는 순간, 하늘에서 다급하게 소리 질러 그의 동작을 멈추게 하셨고, 스데반이 순교 당하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십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아낌없이 부어 주십니다.
이제 말씀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인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또한 시인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막힌 고난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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