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모르는 것은 죄입니다. (역대상 13장 1~8절)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9월 22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13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것은 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충격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모르는 것 역시 죄라는 사실입니다. “몰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모르는 게 왜 죄인가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몰랐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운전자들이 운전할 때는 반드시 교통법규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후 교통경찰에게 붙들렸을 때 ‘몰랐다’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 66권 전체를 달달 암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경학자라도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이 죄라는 너무나 강력한 도전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살펴봅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다윗이 승승장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사울을 없애시고, 용사들을 모아주셨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덕분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오려고 합니다. 먼저 다윗은 이 문제를 혼자서 결정하지 않고 천부장과 백부장 같은 지휘관들, 즉 오늘날 교회의 당회원과 같은 지도자들과 먼저 논의합니다. 다윗의 소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백성들과 논의했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소집하여 이 건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일에 대해서 이스라엘 전체가 만장일치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이는 아무리 중요한 사업이라도 지도자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거나 조급하게 추진하지 않고, 모든 이가 공감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지도자는 독불장군처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는 백성들과 함께 걸어가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다윗이 법궤를 옮기려 한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치력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역대상 13장 3절에 나옵니다.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사울의 시대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울은 망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금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법궤가 있던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1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아주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더욱이 '기럇여아림'은 유다 지파의 경계 안에 있던 땅으로, 결코 이방인의 땅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예루살렘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까닭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백성들과 완벽한 공감을 이루었고, 법궤를 옮기려는 의도도 순수했으며, 온 백성이 이 일을 함께 기뻐하고 환호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입니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 위해 ‘새 수레’를 별도로 제작했습니다. 가장 좋은 최상급 수레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제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역사적인 순간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온 백성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환희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다윗의 열정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의 전조입니다. 이어진 말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준비한 이 모든 과정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내용 가운데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찾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말씀을 모르는 것은 죄>라고 한 것입니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라거나 “모르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실로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였는지는 내일 이어지는 시간에 나누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연구해 보십시오.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곡의 가사는 이렇게 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처음 시작이 어떻게 됩니까?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여러분의 책은 ‘해어졌습니까?’ ‘헤어졌습니까?’ 앞의 ‘해어졌다’는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낡았다는 의미이고, 뒤의 ‘헤어졌다’는 책을 너무 읽지 않아서 이별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성경책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마귀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마귀는 성도 수가 많은 교회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강단의 말씀이 살아 숨 쉬는 교회를 두려워합니다. 마귀는 집 안에 걸린 말씀 액자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기억하며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손과 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성도가 아니라 진짜 마귀가 무서워하는 진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희가 충격적인 도전을 받았습니다. 다른 것이 죄가 아니라, 말씀을 모르는 것이 죄라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몰라서, 말씀에 무지해서 죄를 짓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저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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