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를 운반하는 올바른 방법 (역대상 13장 9~14절)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9월 23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13장 9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다가오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단속이 강화되는 교통법규가 있습니다. 이는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핵심 3대 위반 행위로, 적발 시 무려 10점의 벌점이 부과됩니다. 벌점 10점이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적 벌점이 40점에 도달하면 40일간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그 중요 위반 행위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방향지시등 미점등입니다. 소위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앞으로는 벌점을 받게 됩니다. 자동차는 신호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전자 네 명 중 한 명이 깜빡이를 켜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대가 알아서 비키겠지!’, ‘내 갈 길을 감히 누가 막아!’ 하는 생각으로 깜빡이 켜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운전자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이 작은 소홀함 때문에 수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좌회전을 위해 대기할 때는 반드시 방향지시등을 켜고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오던 차량과 추돌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본인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좌·우회전 시, 유턴 시에는 항상 깜빡이를 켜시기를 바랍니다. 안 켜시면 벌점 10점이 부과됩니다.
둘째, 전 좌석 안전띠 미착용입니다. 예전에는 운전석과 조수석 탑승자만 안전띠를 매면 됐지만, 이제는 뒷좌석을 포함한 모든 탑승자가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합니다. 시내 주행이든 고속도로 주행이든 안전띠는 그야말로 ‘생명 띠’입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안전띠 착용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요즘 새로 나오는 최신 차량은 반드시 안전띠를 매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시동은 걸려도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안전모 미착용입니다. 이는 오토바이 같은 이륜차를 타시는 분들에게 해당합니다. 우리 교회 주변은 골목길이 협소해서 다른 지역보다 오토바이의 통행이 유난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오토바이 운전자가 헬멧을 쓰지 않고 다닙니다. 덥고 불편해서 그러시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가벼운 사고가 별로 없습니다. 사고가 났다 하면 최소 전치 4주 이상으로, 갈비뼈나 팔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토바이가 한 대 팔릴 때마다 ‘**도 한 명 늘어난다.’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혹시 우리 교인분들 중에 오토바이를 타시는 분이 계신다면 정말 각별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고는 한 번 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상대방의 과실로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자신을 위해 꼭 안전모를 착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전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머리가 버스 바퀴에 깔린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운전자는 헬멧을 쓰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 운전자가 헬멧을 쓰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끔찍한 일입니다.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자전거, 전기자전거, 전동 킥보드도 모두 헬멧을 착용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벌점 10점입니다. 제가 왜 이 내용을 말씀드렸을까요? 어제 설교랑 연결 지어 볼 때, 교통법규를 잘 모르고 위반한 것이 면책사유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 몰랐어요. 모르는 게 죄인가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모르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66권의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모두 외울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잘 몰랐어요. 모르는 게 죄인가요?’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이 법궤를 옮기려 할 때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진노하셨을까요? 바로 ‘운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인 역대상 13장 7절을 보면, 다윗은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 옮겼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올바른 운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 이방 민족인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운반할 때 사용했던 세상의 방식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민수기 4장 14~15절 말씀입니다. ‘(14)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15)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법궤)와 성물을 옮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이렇게 상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이자 레위 지파의 조상인 ‘레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레위 자손들에게만 성막의 기구와 성물을 만지고 운반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는데, 이 세 아들이 담당한 역할이 각각 달랐습니다. 제가 예전에 이렇게 외우면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 ‘게르손’, ‘게으르면 천해진다.’ 그래서 ‘천’과 관련된 것들, 즉 덮개나 휘장 같은 직물류를 전담하여 운반했습니다. 둘째 아들 ‘고핫’, ‘고귀한 사람들.’ 그래서 고핫 자손은 성막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지성소 기물들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법궤’를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일은 오직 고핫 자손의 몫이었습니다. 셋째 아들 ‘므라리’,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 그래서 므라리는 비교적 무거운 것들, 기둥, 받침, 말뚝 이런 것들을 옮겼습니다.
이것을 위반하면 그 즉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이 성물을 만지거나 레위인이더라도 고핫 자손이 아닌 사람이 지성소의 물건을 만지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두 마리의 소가 끌게 했습니다. 사람이 해도 모자랄 판에, 레위인이 해도 모자랄 판에, 동물인 소가 끌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했던 그 방법으로 본받아 가장 편한 방식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올바른 방법은, 레위 자손 중 ‘고핫의 자손들이 어깨에 직접 메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역대상 15장 2절과 15절을 보면, 2차 법궤 운반 작전이 시작되는데, 이때에는 소가 아니라, 레위 사람이 직접 메고 갑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모든 레위 사람이 아니라, 고핫 자손이라고 기록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핫이 100점짜리 정답이라면, 레위는 80점짜리 정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제와 오늘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사역에 대해서 함께 보았습니다. 이제 이 내용이 역대상 15장과 16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의 사역에 제동을 걸었을까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편하다고 세상의 방법을 취하면, 친하다고 함부로 대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규칙은 무엇입니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때로는 엄격하게 지켜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전에 배우 차승원 씨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능력이 없으면 열정이 있어야 하고, 열정이 없으면 겸손해야 하며, 겸손하지도 못하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그만큼 눈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좋게 말하면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과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쉬울까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입니다. 말씀은 본인이 편한 방법대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규칙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그것을 엄격하게 지킬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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