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문지기의 대헌장 (역대상 9장 17~27절)
(17) 문지기는 살룸과 악굽과 달몬과 아히만과 그의 형제들이니 살룸은 그 우두머리라 (18) 이 사람들은 전에 왕의 문 동쪽 곧 레위 자손의 진영의 문지기이며 (19) 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의 아들 살룸과 그의 종족 형제 곧 고라의 자손이 수종 드는 일을 맡아 성막 문들을 지켰으니 그들의 조상들도 여호와의 진영을 맡고 출입문을 지켰으며 (20)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옛적에 그의 무리를 거느렸고 (21) 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22) 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열두 명이니 이는 그들의 마을에서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23)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좇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24) 이 문지기가 동, 서, 남, 북 사방에 섰고 (25) 그들의 마을에 있는 형제들은 이레마다 와서 그들과 함께 있으니 (26) 이는 문지기의 우두머리 된 레위 사람 넷이 중요한 직분을 맡아 하나님의 성전 모든 방과 곳간을 지켰음이라 (27)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직분이 있으므로 성전 주위에서 밤을 지내며 아침마다 문을 여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더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9월 15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9장 17절부터 27절까지입니다. <성전 문지기의 대헌장>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역대상 9장은 1장부터 이어져 온 족보의 결론이자,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입니다. 우리가 요즘 주일마다 살펴보고 있는 에스라서의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오늘의 본문인 역대상 9장이 역대 상·하 전체의 주제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역대상 1장부터 8장까지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바벨론 포로라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내일부터 시작되는 역대상 10장부터 역대하 36장까지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렇기에 그 한가운데 위치한 역대상 9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잃어버린 백성을 반드시 돌아오게 하신다’라는 희망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역대상 9장이 역대 상·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회복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우리 성도들이 실패와 낙망 가운데 있을 때 붙잡아야 할 신앙의 디딤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역대상 9장에 나오는 명단의 대부분은 예배를 집례하고 인도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의 명단입니다. 다시 말해 역대 상·하의 관점으로 볼 때,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은 의인이고, 예배 잘 안 드리는 사람은 악인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회복의 열쇠는 예배’입니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오늘의 본문인 역대상 9장 17절부터 2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 ‘성전 문지기의 대헌장’의 ‘성전 문지기’는 가장 먼저 다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편 10절)’ 다윗의 고백입니다. 성전 문지기라고 하면 우리는 하찮은 직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 문지기’는 ‘성전 수비대’의 역할까지 포함합니다.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성전에서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려면 영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성전이 결코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대적들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대적들까지 모두 물리쳐야 하는 사명이 바로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예배가 드려지려면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이 이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사무엘은 레위 사람 중에서 가장 신실한 사람들에게 이 직분을 맡겼습니다. 그들은 ‘비느하스의 후손’이라는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비느하스’가 누구입니까? 과거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서 모압 여인들과 간음할 때, 창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두 남녀를 찔러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멈춘 사람입니다. 이로써 레위인의 저주가 풀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었습니다. 만약 비느하스가 없었다면, 그때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과 그의 백성들이 항상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깨어 경계해야 하는 사명이 이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사명을 감당했던 성전 문지기들이 무려 212명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는 ‘살룸’ ‘악굽’ ‘달몬’ 그리고 ‘아히만’입니다. 성전 문이 네 개였던 것을 고려하면 이 네 사람이 각각의 성문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네 개의 성문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으로 여겨지는 동쪽의 문은 앞서 언급한 네 사람 중 우두머리인 ‘살룸’이 담당했습니다. 이들이 성전을 지켰던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은 쌍을 이루어 7일을 주기로 교대해 가면서 성전의 네 문을 지켰습니다. 심지어는 밤을 새우면서 하루 24시간을 지켰습니다. 성전의 문뿐만 아니라 성전의 방과 곳간들도 지켰습니다. 즉, 성전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행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주방, 방송실, 찬양대, 재정부, 그리고 화장실 청소에 이르기까지 일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그 자리를 지킨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적재적소마다 참여하여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이처럼 성전 문지기의 사명이 고된 사역이었음에도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에 감격해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성전 문지기 직분의 고라 자손은, 사실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그들의 조상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사촌으로, 이들의 영적 권위에 도전했던 인물입니다. ‘왜 너희들만 빛나는 직분을 맡았느냐! 우리도 너희들과 같은 능력자다! 우리도 너희들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라며 하나님을 대적했다가 땅이 갈라져 그 속으로 산채로 빨려 들어가 매장당하는 인류 최악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끔찍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너무나 불명예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그런 아버지의 교만함과 죄를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와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들은 시편(42~49, 84, 85, 87, 88편)을 기록한 예배자로도 등장합니다. 다윗이 성전 음악을 총괄하도록 세운 3대 찬양대장 중 한 사람인 ‘헤만’이 바로 ‘고라’의 후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끝까지 주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은혜’ 오늘 성전 문지기로 선택받은 ‘고라’의 후손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비느하스’처럼 부르셨다는 ‘부르심’과 가장 악한 죄로부터 용서하셨다는 그 ‘은혜’를 주장함으로써 거룩한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를 깨달아야 끝까지 주의 사명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맡겨진 직분은 무엇입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삶을 회복시키는 열쇠는 예배’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를 깨달아 맡겨진 직분을 끝까지 감당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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