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역대상 15장 16~29절)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인 역대상 15장은 다윗 생애 가운데 가장 벅차고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날입니다. 그동안 언약궤를 모셔 오지 못해 얼마나 애를 태웠습니까? 지난날 ‘웃사의 비극’을 겪으며 눈물로 회개했던 다윗은, 이번에는 모세의 율법대로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궤를 메고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셔 옵니다. 이날 다윗과 이스라엘의 장로들, 그리고 천부장들은 온 백성과 함께 환호성을 지릅니다. 나팔과 수금과 제금 소리가 성안에 가득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이 장엄하고 은혜로운 축제의 절정에서, 예배를 대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이 충돌합니다. 첫 번째 시선은 길거리에서 춤추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역대상 15장 27절을 보면, 다윗은 왕이 입는 화려한 왕복을 벗어던지고 제사장의 간소한 ‘베 에봇’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29절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 뛰놀며 춤을 춥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체통, 체면, 권위 따위는 하나님의 궤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라는 그 감격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시선이 등장합니다. 29절 후반부입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미갈’은 은혜의 행렬 한가운데 있지 않았습니다. 저 높은 왕궁의 창가에 팔짱끼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배의 자리에 뛰어든 ‘예배자’가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관찰하는 ‘평가자’입니다. 미갈의 눈에 비친 다윗은 그저 품위를 잃어버린 왕이자 남편일 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미갈의 모습을 보면서 성경의 또 다른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바로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대제사장 ‘엘리’의 시선입니다. 자식이 없어 마음이 괴로웠던 ‘한나’는 ‘실로의 성막’을 찾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한나가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그 모습을 보며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평생 성전을 지켜온 제사장이었지만, 영적 감각이 무뎌지니 성도의 찢어지는 비통함과 참된 기도를 보며 ‘대낮부터 술주정한다’라고 오해하고 정죄한 것입니다.
창가에 서서 춤추는 다윗을 업신여겼던 미갈과, 의자에 앉아 눈물로 기도하는 한나를 술주정꾼 취급했던 엘리 제사장.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자신은 관람석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다른 사람의 예배와 기도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종교적인 껍데기와 세상적인 체면에 갇혀,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찢고 감격에 겨워 뛰노는 ‘진짜 예배’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창가에 서서 춤추는 다윗을 업신여겼던 ‘미갈’과 의자에 앉아 눈물로 기도하는 ‘한나’를 술주정뱅이 취급했던 ‘엘리’ 제사장.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은 관람석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다른 사람의 예배와 기도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종교적 껍데기와 세상적 체면에 갇혀,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찢고 감격에 겨워 뛰노는 ‘진짜 예배’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지금 어떠합니까? 직분을 얻고,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예배의 순서와 격식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다윗’의 자리에서 ‘미갈’의 자리로, ‘한나’의 자리에서 ‘엘리’의 자리로 슬그머니 옮겨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눈물을 쏟거나 감격하기보다는, 높은 창가에 서서 ‘오늘 설교는 어떠한가? 찬양은 음정이 맞나, 저 성도는 왜 저렇게 유난스럽게 기도하나?’ 관람자가 되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다윗은 훗날, 미갈의 비난을 들을 때 이렇게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사무엘하 6장 21절)”
다윗은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교양 있고 세련된 종교인이 아닙니다. ‘한나’처럼 자신의 아픔과 수치를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정직한 심령을 가진 예배자입니다. 다윗처럼 체면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처럼 춤출 수 있는 순수한 예배자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사람의 눈치와 종교적 체면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주님만을 기뻐하는 참된 예배자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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