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9월 16일(수)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대상 10:1~14)
    2026-09-15 14:36:2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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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이 망한 이유 (역대상 10장 1~14절)

     

    (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5) 무기 가진 자가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8)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9월 16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10장 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사울이 망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울은 실패한 왕이고, 다윗은 성공한 왕이다. 사울은 본받지 말아야 할 본보기이고, 다윗은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두 사람의 분량만 살펴보아도 그 답은 분명해집니다. ‘역대기’에서 사울에 관한 기록은 고작 한 장(역대상 10장, 역대상 8장과 9장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다윗에 관한 내용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역대상 11장부터 마지막 29장까지의 모두 다윗에 관한 내용입니다. 무려 18장에 걸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역대상의 주인공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입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잠시 언급하는 수준이며 진정한 본론은 다윗입니다. 특히 다윗에 관하여 보고하는 18장의 내용 중에서 예배와 관련된 내용이 무려 10장이나 됩니다. 쉽게 말해서 역대상은 다윗이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드렸는가에 관한 기록인 셈입니다. 사울이 왜 실패의 길을 걸었는지 그 핵심 원인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깨닫고 사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본문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① 1절부터 7절까지는 사울의 죽음 ② 8절부터 12절까지는 사울의 장례 ③ 13절부터 14절까지는 사울에 대한 평가’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사울의 마지막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울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전쟁의 승패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이 ‘엔돌’에 있는 점쟁이를 찾아갔을 때, ‘사무엘’을 가장한 악령이 그에게 ‘너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다’라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8장). 실제로 그 예언대로 사울은 이 전쟁에서 패했고, 그의 세 아들도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이 두 나라가 싸웠던 ‘길보아’라는 지역은 블레셋의 주무기였던 마병(馬兵)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마병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전쟁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장소를 바꾸든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을 세웠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지도자 사울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패배가 뻔히 예상되는 전쟁을 치렀던 것입니다. 결국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를 포함한 수많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이 전쟁에서 참패합니다. 사울의 세 아들도 귀한 자식이었겠지만 다른 수많은 가정의 귀한 자식들도 어리석은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부상을 당한 사울도 더 이상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자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전쟁이 사울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울 온 집안의 죽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역대상 10장 6절)’ 다시 말해 이 전쟁의 패배는 사울 가문 전체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사실 이날, 사울의 모든 아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네 번째 아들 ‘에스바알’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는 훗날 다윗을 상대로 7년 반 동안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그 반란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반란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의 가문을 멸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인생을 보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처음 된 자 나중 된다’라는 말씀도 실감 납니다.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환경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좋은 여건에서, 어떤 사람은 비교적 나쁜 여건에서 시작합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울의 일생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끝나느냐입니다. 시작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책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끝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책망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끝은 창대해져야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여호수아일 것입니다. 그는 여호수아서가 시작될 때는 ‘모세의 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가 끝날 때는 ‘여호와의 종’으로 거듭납니다. 우리는 모두 사울이 아닌 여호수아처럼 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사울이 죽은 뒤,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머리와 갑옷을 취하여 자신들의 신전에 보관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장례를 치렀고, 이후 7일 동안 금식하며 슬퍼했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위험을 무릅쓴 이유는 사울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사울이 맨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암몬 사람들에게서 구해준 성읍이었습니다. 아직 사울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을 때, 그는 용감하게 나아가 길르앗 야베스를 구출한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의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서 장례를 치러준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사울에 대한 성경의 평가이자, 역대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시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날에 이러한 평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은 왜 실패하고 멸망 당했을까요?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대신 점쟁이의 말을 들었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점쟁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수시로 하나님을 찾기보다 점쟁이를 찾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성경은 블레셋이 사울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울이 멸망 당했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역대상 10장 14절)’

     

    블레셋이 사울을 멸망시킨 것도, 다윗이 사울을 멸망시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울을 심판하시고 그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울은 하나님 대신 점쟁이를 의지했을까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점쟁이는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면, 누구나 사울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사람은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두려움의 대상과 우선순위’를 바르게 세우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첫걸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이 땅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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