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길-셋째 날
용서의 길 (요한복음 13장 1~11절)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년 4월 16일 수요일입니다.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셋째 날입니다. 벌써 3일이 지났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요한복음 13장 1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오늘의 내용은 ‘예수님의 세족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주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세족식에는 어떤 사랑의 비밀이 담겨 있을까요?
첫 번째는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씻기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들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하지만 성경은 가룟 유다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증언합니다. ‘감옥에 들어갈지라도, 고문을 당할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던 베드로를 포함하여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장 50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족식 사건은 단순히 사람들의 발을 씻으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반자들의 발을 씻으신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배반자들의 발을 닦으시면서 이미 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발을 닦으시면서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야고보의 발을 닦으시면서 야고보를 용서하시고, 가룟 유다의 발을 닦으시면 예수님은 이미 가룟 유다를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발도 씻기시면서 우리를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첫 번째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용서야말로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는 표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못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지라도 승리하셨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용서입니다. 만일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은혜입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보다 용서를 한 사람에게 더 은혜가 되는 것이 용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진정 얼마나 많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지상과제요, 지상명령이 바로 용서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서는 잊는 것이다. Forgiveness is Forgetting)’ 용서하려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히는 것이 용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만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누군가를 잊으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족식의 두 번째 비밀은 ‘친밀’입니다. 첫 번째 비밀은 ‘용서’이고, 두 번째 비밀은 ‘친밀’입니다. 우리의 신체 기관 중에서 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발은 우리의 신체 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발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어떤 교우께서 팔이 부러졌는데,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발은 우리의 신체 기관 중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굉장히 하찮게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가장 고생하지만 가장 대우를 못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머리에서 가장 멀다는 이유로, 발은 가장 천대받고 있습니다. 손이나 얼굴은 조금만 상처가 나도 치료를 하지만, 발은 그대로 둡니다. 굳은살이 박이고 못생겨도, 제일 피곤해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냥 양말이나 신발로 가립니다. 이것은 발 처지에서 볼 때는 너무나 억울하고 불평등한 처사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말 쓰는 분이 거의 없겠지만, 예전에는 누군가를 비하할 때 ‘발의 이것만도 못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가장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그 발을 만져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몸을 어루만져 주실 때, 손이나 얼굴이 아닌 발을 만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은 하나님과 만날 수 없었고 혹시라도 만난다면 죄 때문에 죽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 만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우주 끝에 존재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의 사건을 통하여 ‘나는 항상 네 옆에 있다. 나는 항상 너와 동행한다. 네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너를 응원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처럼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릴 때는 하나님과 뛰어놀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얼마나 가까우십니까?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입니까? 참된 신앙의 유익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응답받아 병이 낫고, 부자가 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복이지만, 진정한 복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족식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용서와 친밀함에 대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발을 씻으시면서 이미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면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과의 거리가 단 1센티미터라도 가까워지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는 물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주님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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