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삽시다. (여호수아 24장 25~33절)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30)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이었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그들이 그를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1.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는 가장 큰 상처 중 하나가 바로 ‘비교’라고 합니다. “네 형은 공부도 참 잘했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니?”, “엄마 친구 아들은 이번에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와 같은 말들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기를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면 성에 차지 않고, 자녀 역시 아버지의 큰 그림자에 가려 자존감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위축되는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조선의 영조와 사도 세자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사도 세자는 학문보다는 사냥과 무술 같은 활동적인 분야에 소질이 있었지만, 영조는 그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칭찬보다는 늘 꾸짖음이 앞섰고, 결국 두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사도 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2.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볼 때 매우 이상적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였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 사명을 잘 감당한 차세대의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평생 사람들에게 들어야 했던 말은 “모세 때는 이랬는데…”라는 비교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좋든 싫든, 끊임없이 스승 모세와 비교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분명 본받을 훌륭한 스승이었지만, 동시에 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이었을 것입니다.
3. 이처럼 거대한 벽을 마주해야 했던 여호수아의 인생 마무리는 어땠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사명을 다 마치고 임종을 맞습니다. 그의 마지막 사명은 세겜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는 일이었습니다(여호수아 24장 25절). 이것은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 율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즉 출애굽 2세대에 맞는 ‘현재(現在)의 순종’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어지는 26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 세웁니다. 이 돌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요? 여호수아 24장 27절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이 돌은 증인, 즉 ‘침묵의 증인’입니다. 비록 말은 못 해도 사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변치 않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 견고한 바위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4. 여호수아는 이 일을 끝으로 역사의 무대 속으로 사라집니다. 여호수아 24장 29절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입니다. 그동안 모세에게만 허락되었던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가 드디어 여호수아에게도 붙여졌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모세의 수종자(隨從者)’로 시작했던 그가, 인생 마지막에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명을 다 마치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5. 객관적으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의 중요성이나 비중은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일 뿐,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조연이나 단역이 없습니다. 모두 다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입니다. 사명이 다를 뿐,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가는 없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출애굽 사명이 비중이 커 보일지 몰라도,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 사명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아니, 지금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작은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합니다.
6. 따라서 다른 사람 흉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점은 배워야겠지만, 부러워하며 끊임없이 모방하려고만 하면 자신의 고유한 장점까지 잃어버립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흉내 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지만,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을 발로 밟으며 건넜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지만, 여호수아는 거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칼을 들고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왜 모세처럼 못 하니?”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몫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을 뿐입니다. 그 결과,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모세와 똑같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받은 사명과 일하는 방법은 달랐어도 충성됨은 같았기 때문입니다.
7. 우리는 종종 누군가와 비교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앞선 사람이 일을 너무 잘해서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위축됩니다. 여러분, 그때 여호수아를 기억하십시오. 모세라는 기라성(綺羅星)과 같은 인물 다음에 세워진 여호수아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하십시오. 훗날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만약 꾸짖는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왜 너는 모세처럼 살지 못했느냐?”가 아닙니다. “왜 너는 내가 너에게 준 강점으로 살지 못했느냐, 왜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살았느냐, 내가 너에게 준 강점으로 살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오늘은 2025년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강점, 그리고 소중한 은사를 기억하십시오. 남들과 비교하며 인생을 낭비하기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문)) 하나님, 참된 나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남들과 비교하며 위축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나의 강점과 은사를 발견하여 2025년의 마지막 하루를 기쁘고 충성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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