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분별하라 (요한일서 4장 1~12절)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1월 6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 1절부터 12절까지입니다.
요한일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는 사랑의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로 온통 가득한 책입니다. 오늘 본문에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열 번 이상 나옵니다.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간의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사랑을 좋아하고 사랑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각자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우화 중에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자와 소가 있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반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둘은 너무 사랑해서 늘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소는 사자를 위해 맛있는 풀을 뜯어서 식탁에 차렸습니다. 사자는 풀이 싫었지만, 소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것을 참고 먹었습니다. 또 사자는 소를 생각하면서 맛있는 고기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생 풀만 먹던 소였지만 사자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것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사자와 소는 싸우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에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어”였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서로 아끼고 사랑했지만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끝내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소는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는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기에 자기들의 기준에서만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관점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랑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사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시겠습니까?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요한 사도는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을까요? 또한 요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전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본문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 요한일서 4장 1~3절의 말씀은 영(靈) 분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 분별은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먼 타지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교회를 정해야 한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정하시겠습니까? 또한,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집에 방문해서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분별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이단이 왜 이단일까요? 목사님이 이단이라고 하니까 이단입니까? 아니면 어떤 권사님이 이단이라고 하니까 이단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그것이 이단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선동되어 이유도 제대로 모르고 예수님을 죽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당시에 우리가 살았다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종교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최종 판단자는 바로 ‘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말할 때 그것을 참고만 할 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물어보실 것입니다. “너는 왜 예수를 믿었느냐? 너는 그동안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느냐?” 이렇게 물어보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해야 하겠습니까? “나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예수님 믿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렇게 답하실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본문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은 이단의 분별 기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成肉身)하신 것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어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 태어나셨고, 우리와 똑같이 식사하셨고, 우리와 똑같이 화장실도 가셨고, 우리와 똑같이 잠도 주무셨고, 다만 우리와 달리 죄는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이단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그분의 성육신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 이하는 본격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7절(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은 찬양곡의 가사로 더 잘 알려진 부분입니다. 7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 이웃이 서로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성도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신앙입니다. 안으로 굽어지는 치우친 사랑이 아니라 밖으로 펼쳐진 넓은 사랑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은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한복음 14장 9절)’ 예수님처럼 자기희생의 사랑을 할 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먼저일까요? 복음이 먼저일까요? ‘사랑이 먼저냐? 복음이 먼저냐?’의 구도에서 볼 때 사랑은 매우 진보적인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교회는 ‘간디는 지옥에 있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입니다. 간디처럼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예수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질문하겠습니다. 만약에 간디가 진짜 지옥에 있다면,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의 여성도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아파트 베란다의 에어컨 환기통에서 추락사한 소위 말하는 ‘에어컨 목사’는 천국에 들어갔을까요? 사랑이 먼저냐 복음이 먼저냐 이 질문은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를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교회를 왜 다니십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나 천국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과 천국은 덤이지 본질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구절, 요한일서 4장 11절과 12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에서 완성된다는 오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저희, 그 사랑의 힘에 덧입어 이웃을 마음껏 사랑하게 하옵소서. 만약 이웃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충분한 사랑을 공급받게 하옵소서. 죽어서 시작되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천국’을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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