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안에 거하라 (요한일서 4장 13~21절)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1월 7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 13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내주(相互內住)’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해야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상태가 되고, 우리는 그때부터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첫 번째 방법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안에서 거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영지주의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 영적인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성도는 오직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4절 말씀입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시편 119편 18절 말씀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결론적으로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셔야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겸손히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여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셔야 우리가 깨닫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하여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2~23절 말씀입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치 천지창조 하실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으시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간절히 사모하고 구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내주’를 경험하는 두 번째 방법은 요한일서 4장 15절에 나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두 번째 방법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에서의 강조점은 ‘누구든지’에 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내주’가 이뤄지는 데 이 은혜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인종, 성별, 나이,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단 하나의 유일한 조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렵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이 땅의 그 어떤 종교보다도 공평하고 평등한 종교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상호내주’를 경험하려면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장 8절 말씀의 반복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임을 주장하여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절대적인 속성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삶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드러내는 증거이며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반드시 표현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항상 위기였습니다. ‘핍박’이라는 외부의 문제가 있었고, ‘이단’이라는 내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들은 ‘사랑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의 핍박이든, 안에서의 이단이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사랑밖에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나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핍박하는 사람도,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흔들려는 이단도 모두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마지막 때를 얼마 안 남긴 요한이라고 하는 노사도(老使徒)가 교회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면서 쓴 편지입니다. 요한일서는 그러한 상황에서 탄생하게 된 값진 열매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는 진주알같이 귀하고 주옥같은 말씀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어제도 그렇지만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사랑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단이 이단인 이유는 결국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의 백혈구라는 면역 세포가 우리 몸을 어떻게 보호하는지 아십니까? 백혈구는 우리 몸의 '면역군(免疫軍)'으로서 우리 몸에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 암세포 같은 감염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지킵니다. 쉽게 말해 우리 몸의 군대가 바로 백혈구입니다. 특히 백혈구는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침입한 세포를 ‘기억’함으로써, 다음번에 똑같은 세균이 침입했을 경우 더욱 빠르고 강하게 대처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방접종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우리 몸 안에는 백혈구 말고도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 줄여서 NK cell)라는 세포도 있습니다. 자연살해세포는 아주 특별한 세포인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자기의 몸으로 껴안아서 제거하는 세포입니다. 이 세포는 백혈구와는 달리 항체나 사전 학습 없이도 즉각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예방접종이 없어도 이 세포는 활동합니다. 즉, 사랑으로 원수를 껴안고 변화시키는 세포가 바로 이 세포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이러한 사랑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결국 우리 몸과 밖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겠노라고 떠드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실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장 20절)’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었는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우리 모두 더욱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눈앞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지난날이 부끄럽습니다.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사랑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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