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든지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20장 10~26절)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18)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율례를 따르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19)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21) 그러나 그들의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지켜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따르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힌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내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으나 (22)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막아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23)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에 헤치리라 하였나니 (24)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25) 또 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는 뜻으로 보통 외모나 성격, 재능 같은 좋은 것들이 대물림될 때 긍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축구 선수 손흥민 선수를 보면 이 말이 떠오릅니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고 화려한 기술보다 혹독한 기본기 훈련에 집중시켰습니다. ‘성공보다 성장’, ‘실력보다 인성’을 강조한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 덕분에 손흥민 선수는 실력은 물론 겸손한 성품까지 겸비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부전자전의 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도 많습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부모의 자녀가 똑같은 길을 걸을 확률이 일반 가정보다 3~4배나 높다는 통계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끊어내지 못한 죄와 상처의 대물림, 이것이 바로 부정적인 ‘부전자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늘 부모처럼 신앙생활을 잘합니까? 반대로 신앙이 없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는 좋은 신앙을 갖기는 어려운 일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洞察)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역사를 되짚으십니다. 본문은 출애굽 1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고 생명을 주는 율례와 규례를 받은, 선택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역사는 ‘실패한 신앙 전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먼저, 출애굽 1세대를 보십시오. 에스겔 20장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주셨지만, 그들은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고 안식일을 더럽히며 스스로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지만, 이방 민족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질까 염려하여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신 겁니다.
문제는 다음 세대, 즉 광야 2세대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1세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2세대에게 특별하고도 자비로운 경고를 하십니다. 에스겔 20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율례를 따르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 하나님께서 직접 “너희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따라가지 마라. 그 죄의 고리를 너희 세대에서 끊어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의 실패가 자녀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2세대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에스겔 20장 21절은 비극적으로 증언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그들은 1세대와 똑같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의 실패를 보았고 하나님의 경고까지 직접 들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 아비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부정적 부전자전’입니다. 환경이나 부모 탓을 할 수 없는, 명백한 자기 자신의 선택이자 반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대물림되는 죄와 절망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정신과 의사 M. 스캇 펙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나오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시카고 슬럼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를 위탁 가정에 맡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면서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결국, 10대 시절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까지 하게 됩니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개의 사람은 슬럼가에서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걸려 사회보장제도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작은 회사에 취직해 3년 만에 최연소 과장이 되었고 5년 뒤 결혼하여 사려 깊고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업가이자 부자가 되었습니다. 스캇 펙은 이 남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정신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최악의 환경과 정신적 외상을 어떻게 그가 이겨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며 그는 그것을 ‘신의 은총, 곧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 속 광야 2세대와 스캇 펙의 나온 한 남자의 인생이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습니까? 광야 2세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고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최고의 영적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비의 길’을 선택하여 실패했습니다. 반면, 슬럼가에서 태어난 한 남자는 태생부터 환경까지 모든 것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절망의 대물림을 끊어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 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 죄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반응하여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환경이 어떠하든, 너의 부모가 어떠했든, 그것을 핑계 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나의 은혜를 붙들고 죄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라.” 이 음성에 순종하여 믿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가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자녀들에게는 실패와 상처가 아닌, 믿음과 순종의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는 복된 믿음의 조상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로 부모와 환경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처와 죄의 습관들을 핑계 삼아, 우리의 죄를 정당화(正當化)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각자가 믿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첫 세대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불순종의 아픔이 아닌 순종의 기쁨과 축복을 물려주는 믿음의 부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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