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팀입니다. (에스겔 21장 1~17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6)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1)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13)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여러분은 좋아하는 운동 경기가 있으십니까? 최근 저는 자동차 경주를 보게 되었는데, 한 경기 단체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게는 2,000억 원에서, 많게는 5,000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더불어, 운전자 한 명뿐만 아니라 정비팀, 기술팀, 개발팀 등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단체 운동 경기의 특징입니다. 한 사람만 잘한다고 경기에 이길 수는 없습니다. 승리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운동 경기로 비유하면 어떨까요? 신앙생활 역시 단체 경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주님의 몸 된 공동체’라고 비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의인과 악인이 겪는 고통이 같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에스겔 21장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인과 악인 모두 심판을 피해 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과연 공의로운 것인지 의심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심판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오랫동안 범한 죄의 대가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공동체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모든 몸이 함께 아픈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강조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심판이니, 악하게 살든 선하게 살든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눈물이 많은 선수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경기에서 공격수로 그가 골을 넣었지만, 팀은 패배했습니다. 대회에서 탈락하며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손흥민 선수는 말합니다. “제가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팀이 더 많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실책을 탓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심판의 기쁨을 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에스겔은 무너지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에스겔 21장 12절 말씀입니다.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심판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슬픔이어야 합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자세 역시 오늘 에스겔의 마음처럼 탄식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파동 교회 성도님들, 오늘 말씀 앞에 우리가 함께 서기를 원합니다. “나는 잘하고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안심하는 것은 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한 팀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누군가 아프면, 누군가 고난에 있으면 그 성도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전도서를 쓴 지혜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서 4장 11~12절 말씀입니다.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 모든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한 마음을 품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같은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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