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5년 8월 25일(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 (에스겔 22장 1~16절)
    2025-08-24 22:38:37
    청파동교회
    조회수   62

    부끄러움의 은혜를 깨닫게 하소서 (에스겔 221~16)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3)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4)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5)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6) 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에 있었도다 (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8)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9)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10) 네 가운데에 자기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과 관계하는 자도 있었으며 (11) 어떤 사람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의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그 자매 곧 아버지의 딸과 관계하였으며 (12)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네가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로 말미암아 내가 손뼉을 쳤나니 (14)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15)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서 멸하리라 (16) 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1.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히브리어 의미는 평화의 도시입니다.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보면 겉으로 풍기는 느낌으로만 보면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싸움이 그치지 않은 곳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중동의 화약고라고 합니다. 평화롭게 보이지만, 자칫 잘못 건드리면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첨예한 대립과 반목의 도시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인간의 포악과 죄의 본성, 폭력이 녹아 있는 이 예루살렘이 장차 평화의 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지어주시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2. 오늘 본문 에스겔 222절에서도 하나님은 이 예루살렘을 피 흘린 성읍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 도시의 죄악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심판을 선포합니다. 마치 고소인이 피고인을 향해 고발장을 쓰듯 말씀하십니다. 실제 인터넷에 고소장의 양식을 찾아보니 첫 번째 장이 고소인과 피고인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그다음 장에 보면 고소의 취지와 구체적인 고소의 내용을 기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오늘 말씀과는 별개지만,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를 고소하거나 피소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3. 이런 고소장 양식과 오늘의 본문이 비슷합니다. 먼저 에스겔 22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소인이 되어 피고인이 되는 예루살렘을 고발하겠다는 취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6~12절은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일반적인 고소장은 여기서 끝납니다. 이 고소장을 보고 이제 이것을 실제 법정까지 가서 재판할지 경찰과 검찰이 보고 판단을 하겠지만, 하나님은 고소인임과 동시에 심판자가 되셔서 예루살렘을 향해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에스겔 2213~16). 다함께 에스겔 2215~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 멸하리라. 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특별히 마지막 문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고소하고 심판하시는 이유의 본질은,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그들이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4. 이것은 달리 말하면, 예루살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자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며, 오직 홀로 영광 받으셔야 한다고 말로는 고백하고 예배했지만, 실제 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어도 점차 마음의 거리낌이 없게 되고, 죄의 모습들은 점차 깊어 갔습니다. 부모를 업신여기고 사회적인 약자인 나그네, 고아, 과부를 무시하고 학대했습니다. 성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이 죄인 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고위층에게 뇌물을 주며 억울한 사람의 피를 흘리고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해도 그것이 부끄러운 죄인 줄 모릅니다. 이것은 당시 예루살렘 백성들만의 문제만이 아닐 것입니다. 도덕 불감증에 걸린 현대인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죄를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5.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소설가 박완서 씨가 쓴 부끄러움을 가르쳐드립니다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공통으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인물들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던 학창 시절 여학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입에 풀칠하느라 부끄러움을 잃어버렸고, 좀 형편이 나은 사람들조차도 더 많은 재산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내던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6. 일반적으로 용인(容認)되는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워합니다. 꼭 이런저런 행동을 해야 부끄럽고 죄가 된다는 글자로 된 규범이 없더라도 우리는 잘못된 행동이나 말했을 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소설에 나온 인물들처럼 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듯합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니 거짓말을 해도 낯빛이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야?’라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평가는 더 이상 칭찬이 아닌 세상입니다. 말 그대로 후안무치(厚顏無恥)입니다. 얼굴 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시대를 저와 여러분이 살아갑니다.

     

    7. 죄를 지었음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현상은 왜 일어날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인데 미련한 인생들은 주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습관적인 죄를 지으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의 화인(火印)을 맞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죄를 죄인 줄을 모르는 상태, 죄를 인지하는 능력 자체를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8. 잘못된 것이 발견되었을 때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며 적당히 눈감아 주고 넘어가면 당장은 평화로울 것입니다. ‘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며 만족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죄의 반복은 습관적인 죄로 진화하게 되고 우리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로 만들어 갑니다. 결국 평화는 무너지고 그곳은 인간의 온갖 탐욕과 야망으로 가득 찬 곳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부끄러움의 은혜를 깨닫게 하소서. 주님, 내가 죄를 지을 때 그 죄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알게 하소서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늘 깨어 있는 예민한 신앙인 되길 소망합니다. 영적인 안테나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찾고, 습관적인 죄악에 빠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아멘.

     

    기도문)) 하나님, 부끄러운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깨닫는 부끄러움의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