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맡은 자의 책임을 다하라. (로마서 3장 1~8절)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5년 9월 6일 토요일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과 혼이 깨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합니다. 환절기 감기에 항상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3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는 약 3,00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하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유대인이라는 특별한 민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민족입니다. 우리 역시 핏줄로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갈라디아서 3장 29절 말씀(‘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에 근거해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나은 점은 무엇일까요? 본문 로마서 3장 1절 말씀에 나오는 바울의 질문입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점은 엄청나게 많다.’라고 말합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한 가지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고 실천해야 할 사명을 가장 먼저 받은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3장 3절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대인들이 그 말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면, 그 말씀에 순종한 자들보다 불순종한 자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 심판을 받고 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맡기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이 실패는 하나님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잘못 때문입니까? 사람의 잘못 때문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말씀을 맡긴 하나님의 신실한 의도를 훼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장 4절)’ 지금, 사람과 하나님이 재판장에 있습니다. 둘 다 피고입니다. 작금의 잘못된 결과를 놓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공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말씀을 맡긴 하나님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 말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인간의 책임인가? 이 문제를 놓고 만약 법정에서 사람과 하나님이 다툰다면 누가 승리할까요? 당연히 사람이 패하고 하나님은 승리할 것이라고 성경을 근거로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정리해 보면, 유대인들의 우월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 최초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본문 로마서 3장 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로마서 3장 5절부터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제기(提起)된 두 가지의 질문을 다룹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든 인간은 불의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것입니다. 방금 재판장에서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이고 하나님만이 의로운 존재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뭔가 기준이 필요하고 비교 대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불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기 위해서 인간의 불의가 필요하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너무 치졸하신 것이 아니냐? 결국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가 유대인의 불의를 드러나게 하셔서 자신을 돋보이려고 한 것 아니냐?’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인간의 불의로 하나님의 의가 고양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진노하신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로마서 3장 6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것과 상관없이 의로우신 분이었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 3장 7절,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는 주어가 나입니다. ‘만약 나의 거짓말로 인하여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풍성해지고 하나님이 더욱 영광을 받으신다면, 결국 내 불의가 점수를 얻어 내 몫의 죄와 심판을 모두 면제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로마서 3장 7절)’ 예를 들면, 내 키가 150센티미터이고 하나님의 키가 300센티미터라면, 하나님의 키를 더욱 크게 하는 방법은 내 키를 점점 줄이는 것입니다. 내 키를 점점 줄이면 하나님의 키가 더 커 보이니, 하나님이 그럴 때는 나에게 보너스 점수를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 보너스 점수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3장 8절을 보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악을 행하는 일>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돋보인다.’라는 주장입니다. 우리의 키가 줄어들수록 하나님의 키가 더 커 보이니 우리의 죄가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더 잘 드러날 것이므로 우리는 더욱 악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괴상한 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이 말씀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도 불의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감을 지닌 유대인들이 바울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왜곡된 복음의 내용들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바울을 대적하기 위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론으로 바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바울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그럴 수 없느니라!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진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입니다. 올바른 길이라고 해서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도 가시밭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시험이 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을 때, 때로는 칭찬이 아니라 비난을 받습니다. 즉, 우리는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말씀을 맡은 자의 책임을 다하라.’입니다. 유대인들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은 자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의무일까요? 먼저 말씀을 받았으니 먼저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선택을 받았으니 먼저 정죄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권에는 거기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겸손’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해가 잘 되셨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떤 말씀보다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또 읽고 공부하고 공부한 결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산 사나이로 불리는 엄홍길 대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준 것입니다.” 산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을 10 독, 100 독을 했을지라도 그 말씀을 온전히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평생 성경을 읽고 묵상한 목사들도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매일 아침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9월 한 달도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벌써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뜻깊은 9월 한 달이 되게 하옵소서. 하루하루 말씀으로 은혜받게 하시고, 말씀으로 힘을 얻게 하셔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생활할 때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넉넉히 생활하게 하옵소서. 아픈 교우들을 치료해 주시고 어려운 교우들을 일으켜 주시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새 힘과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자리에 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로 충만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게 하옵소서. 청파동 교회에 속한 모든 교우들을 넓으신 주님의 날개로 안전하게 품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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