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4월 28일(화)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시106:1~12)
    2026-04-27 19:51:26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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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서야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시편 1061~12)

     

    (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428일 화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061절부터 12절까지입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61)’ 오늘의 본문, 시편 106편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선하시며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에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선하심은 토브라고 하는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실 때 그 좋았더라가 바로 토브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우리에게 선하신 분이지만 고대 근동의 신들은 인간들에게 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인간들을 괴롭히고 이용하려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입니다. 인자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자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변함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이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태도나 삶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용납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며 무조건 다른 성도들을 용납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감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성도들이 괘씸하고 얄밉고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더욱 겸손해지십니까? 주변 사람들이 더 사랑스러워지십니까?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자신의 죄가 크게 보이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셔야 합니다. 이러한 교만과 원망의 마음은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겸손해지고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죄를 더 크게 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누가)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시편 1062)’ ‘누가 진정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할 수 있느냐?’ ‘누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063)’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편 1064절과 5절은 시인의 간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 볼 것은 4절과 5절의 주어6절과 7절의 주어입니다. 먼저, 4절과 5절의 주어는 입니다.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시편 1064~5)’ 이처럼 4절과 5절에 나오는 간구의 주체는 바로 입니다. ‘를 기억하소서. ‘를 돌보아 주소서. ‘가 주의 형통함을 보게 하소서. ‘가 주의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모두 가 주어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6절과 7절의 주어는 가 아닌 우리입니다. ‘(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시편 1066~7)’

     

    여러분,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감사와 찬양 그리고 간구입니다. 그런데 6절부터는 갑자기 그 주제가 바뀌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악한 죄악들이 등장합니다. 분위기 좋았는데, 시인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난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행했던 범죄 사건에 오늘의 주인공인 시인 자신도 동참했음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6절의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이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누군가가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교만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저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는 저런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저렇게 하는 사람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것과 같군요. 저는 저런 상황에서 더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저 사람이 저보다 더 낫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시키실 때 나를 포함하여 달라고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죄악을 책망하실 때는 나도 그 범죄에 동참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여러분,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우리 청파동교회 성도들은 운명 공동체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그 사람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은 곧 그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체(肢體)’라는 말 아시지요? 우리 몸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머리와 손과 다리도 몸의 지체입니다. 허리도 지체, 등도 지체, 엉덩이도 지체입니다. 그런데 엉덩이는 창피하다고 떼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귀가 못생겼다고 떼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정상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갈 때 손만 가게 될까요? 얼굴만 가게 될까요?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잘못된 역사는 멈추고 시정되어야 하지만 실제 역사를 그렇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과거 홍해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일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열 가지의 재앙을 직접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 놓았습니다.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애굽기 1410~12)’

     

    하나님은 이 괘씸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구원하지 않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의 본문 시편 1068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설교의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그들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항상 감사하며 서로를 용납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감사로 충만하십니까? 사랑으로 충만하십니까?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형제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배은망덕하고 은혜도 모르는 너무나 괘씸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하며 형제 사랑은커녕 늘 형제들을 미워하며 살아갑니다.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라도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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