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5월 13일(수)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고전 2:1~9)
    2026-05-12 17:29:3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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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십자가로 삶을 재해석하라! (고린도전서 21~9)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513일 수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21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삶을 재해석하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고린도전서 21~9)의 주인공 사도 바울은 부족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문을 닦았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설교와 논리에 능통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성공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린도전서 23)’ 무엇이 그토록 당당했던 바울을 두렵고 떨게 했으며 약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아갈 때, 뛰어난 말솜씨나 지혜의 탁월함으로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 도시는 수사학과 철학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웅변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현재 우리의 삶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삶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재해석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지혜와 생각, 인간과 하나님, 교회와 역사, 사물과 세계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빌립보서 38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여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라는 그의 주장과도 일치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겠다고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아침에도 예수 밤에도 예수, 가난해도 예수 부유해도 예수, 오직 예수, 그러한 오직 예수의 골수분자로 바울이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부터 바울은 오직 성경책만 읽고, 교회에서만 살고, 믿는 사람들만 만나고, 그동안 배워온 자신의 모든 학문을 버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린 후에도 여전히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수사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예수님만 전하고, 예수님만 알고, 예수님만 믿겠다는 바울의 고백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예수님 십자가의 빛 가운데 다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일지라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에게 유익한 열매가 열린다면, 오히려 나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내 소득이 줄어들고, 내가 감옥에 갇히고, 고생길이 훤할지라도 나의 선택이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나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아예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의 삶을 재구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광양 국내 선교, 필리핀 단기 선교와 같은 사역들입니다. 자발적 고난입니다. 선교 기간 내내 얼마나 큰 고생을 하며, 얼마나 힘든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까? 차라리 그 시간이면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집에서 스마트폰 보면서 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과 비용을 내어놓고 국내외 선교에 참여하는 것,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과 비용을 내어놓고 주방 봉사를 하고, 소망부 소풍의 봉사자로 참여하고, 골목길을 청소하고, 효 입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찬양대로 봉사하고,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여러 헌신과 수고를 하는 것은 비록 나에게는 그것이 손해가 될지라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그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과 같은 오직 예수의 골수분자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 십자가의 빛으로 나의 인생을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24절과 5절의 말씀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언제 변화될까요? 유창한 인간의 설득력으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사람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겠다!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기꾼들, 얼마나 유창합니까? 보이스 피싱 사기꾼들 얼마나 유창합니까? 그 앞에서 다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우리는 그것이 거짓말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지혜는 잠시 그 순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과 유창한 설득력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만 인간은 변화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설교를 가장 잘하시는 목사님이 우리 청파동 교회에 오셔서 아무리 설교를 유창하게 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그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자는 (바울처럼)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나타나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우리는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무력감은 지금 내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안되는구나!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구나!’ 이것을 느끼는 것이 무력감입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내 힘을 빼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임을 깨달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본문 고린도전서 26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은 진정한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성육신(聖肉身)하신 예수님이 지혜라고 선언합니다. , 지혜란 수사학적인 언어 기술이나 신비 종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통치자들은 그러한 지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십자가를 실패와 수치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구원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빛 아래 우리의 인생을 재해석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실패자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실패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수치스러운 자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수치스러운 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이 세상의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고 이 세상의 수치를 자랑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세우십시오. 약함 속에 머물지 말고 약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붙드십시오. 진정한 지혜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이 고백이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도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자랑을 뒤로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오니, 우리 삶에서 십자가의 빛이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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