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5월 8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룻 4:7~12)
    2026-05-07 17:32:4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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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스는 왜 손해 보는 장사를 했을까? (룻기 47~12)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58일 금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47절부터 12절까지입니다. <보아스는 왜 손해 보는 장사를 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를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집을 사거나, 결혼하는 인생의 중대사뿐만 아니라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구매하는 사소한 일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지, 불리한 쪽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콩나물을 사더라도 덤으로 더 달라고 하지 덜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갓 태어난 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왜 울까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이처럼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합니다.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심지어는 식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식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치열한 경쟁이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똑똑한 강아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이 훈련을 잘 시키고 싶어도 똑똑한 강아지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보아스는 손해 보는 장사를 했을까? 왜 보아스는 밑지는 장사를 했을까? 앞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한다고 했는데, 왜 보아스는 손해 보는 장사를 했을까요?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면 오늘 보아스의 선택은 명백한 악수(惡手)’입니다. 어제 아무개라고 하는 첫 번째 기업 무를 자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단순히 땅값이 비싸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룻기 4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다, 나오미를 대신하여 이 가정의 밀린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일, 그 집안의 과부 룻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주는 일, 그리고 그 자식에게 유산을 넘겨주는 일,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첫 번째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 확신이 강했는지, 자기의 신발을 벗어서 한 번 더 확실한 증거를 삼습니다. 지금처럼 인감도장이나 공증 제도가 없었던 과거에는 이렇게 신발을 벗어서 자신의 확실한 태도를 증거로 남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무개보다 덜 똑똑하여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보아스 역시 나오미를 대신하여 이 가정의 밀린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일과 그 집안의 과부 룻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주는 일이 결코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기꺼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습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보아스에게는 물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라는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너무나 뻔한 질문이지만 한번 답해 보십시오. ‘물질이 중요할까요? 생명이 중요할까요?’ 당연히 생명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시대는 생명보다 물질을 훨씬 더 중시하는 사회입니다. 뉴스를 보면 돈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을 빼앗으려고 직접 사람을 죽이는 살인강도 행위도 있지만,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많은 사람이 죽는 그런 안타까운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 뉴스에 나오는 대개의 사고는 인재입니다. 조금만 더 비용을 들여서 안전시설을 갖추었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엘 제도에 따르면, 보아스가 땅값을 대신 갚아주고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을지라도 그 아들은 보아스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보아스의 입장에서는 볼 때는 자기의 돈을 들여 비싼 땅을 매입했지만, 그 땅은 결국 다른 집안의 재산으로 귀속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아스에게 큰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보아스에게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받아야 할 재산의 상속분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보아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에게는 물질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이러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들을 거두지 않는다면, 만약 누군가가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세 모녀 사건처럼 이들은 어느 날 아사(餓死) 상태로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보아스는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것보다, 한 생명을 살리고 한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을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보아스가 이렇게 한 이유는 룻을 향한 그의 사랑이 의지적(意志的)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감정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 보아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철저한 의지적 사랑이었습니다. 의지적 사랑이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겉으로만 축복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법적인 절차를 따라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가정의 경제적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의지적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라!”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구체적인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아스가 손해 보는 장사를 했던 이유는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용기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 비용은 최소가 되어야 하고 결과는 최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효율 중심적 사회에서 손해 보는 일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미련한 짓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때로는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해타산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당시 보아스는 유력한 재력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재력을 자신을 위하는 일에만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 자를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이름이 끊어지는 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히 보아스를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손실이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생기는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될까요? 도움은커녕 신경만 쓰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의지적 사랑으로 (요한복음 131)’ 자신의 생명이라는 가장 큰 값을 치르셨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보아스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 위에서 베푸실 손해 보는 사랑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 역시 손해 보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지 말고, 손익을 따지지 말고, 먼저 실천부터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마지막 두 구절인 룻기 411절과 12절 말씀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손해 보는 사랑은 무조건 우리에게 불리할까요? 우리가 손익을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큰 피해가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보아스의 놀라운 헌신의 결단 앞에 마을의 모든 사람이 나와서 축복으로 화답합니다. 그들은 보아스와 결혼하는 이방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들은 룻과 결혼하는 보아스가 예수님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들은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세우게 될 이 가문이 유다의 가문처럼 복된 장자의 가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손익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랑하기로 결단했을 때, 예상치 못했던 하늘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지급한 것은 유한한 재물이었으나 그가 얻은 것은 영원한 하늘의 영광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일까요? 물질보다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 사랑을 할 때, 감정적 사랑만 아니라 의지적 사랑을 하는 것, 누군가를 섬길 때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더욱 기쁜 맘으로 주의 일에 충성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깨워주시고, 저희에게 귀한 사명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해야 할 사명, 성경을 읽어야 할 사명, 하루를 살아갈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행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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