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시편 106편 34~48절)
(34)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신 그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 (39)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러워지니 그들의 행동이 음탕하도다 (4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 (41)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 (42) 그들이 원수들의 압박을 받고 그들의 수하에 복종하게 되었도다 (43)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44)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45)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46)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47)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48)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4월 30일 목요일입니다. 4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주안에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06편 34절부터 48절까지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시편 106편 34~48절)은 ① 34~39절 ‘끝까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② 40~43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③ 44~48절 ‘극적인 운명의 전환’ 이렇게 세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 시편 106편 34절부터 39절까지 <끝까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 부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다룹니다. 홍해를 건너고 40년의 광야 훈련을 받고 드디어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약속의 땅에 입주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이방인들을 반드시 절멸(絕滅)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악한 행위를 배웠고 배운 대로 그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결국 그것이 이스라엘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함정을 파고 그곳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어도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에스겔 16장 33~34절 같은 경우에는 보통의 창기들은 음행의 대가로 돈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방 나라에 돈을 주면서 음행했다고 말씀합니다. ‘(33)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34) 네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값을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에스겔 16장 33~34절)’
사기꾼에게 걸려들어 어쩔 수 없이 돈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기꾼에게 가서 자발적으로 돈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리석어도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누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은 자기의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입니다. ‘(37) 그들이 그들의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도다 (38) 무죄한 피 곧 그들의 자녀의 피를 흘려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시편 106편 37~38절)’ 왜 자기 자식을 우상에게 희생제물로 바쳤을까요? 돈 많이 벌려고,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즉,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39절 같은 경우는 이방인들의 신전 매춘 행위를 그들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도 더러운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본문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뿐입니다. 시편 106편 40절부터 43절까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칠 줄 모르는 우상숭배는 결국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유업과 백성을 이방 민족에게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원수들의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러 차례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여러분, 요즘 집에서 반려견들을 많이 키우시는데, 똑똑한 강아지를 키우기가 쉬울까요? 아니면 똑똑하지 못한 강아지가 키우기 쉬울까요? 보통은 똑똑한 강아지를 키우기 쉬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똑똑한 강아지는 주인의 말귀를 잘 알아듣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심지어는 구구단을 외우는 강아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똑똑한 강아지는 보통 강아지보다 훈련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요령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강아지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합니다. 본능대로 합니다. 그러나 똑똑한 강아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로마서 16장 19절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라’는 말씀입니다. 보통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도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고, 어른들도 자녀들에게 똑똑한 사람이 되라고 늘 말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왜 너는 바보 같냐고 꾸중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당신은 참 똑똑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똑똑한 대통령, 똑똑한 목사님, 똑똑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신앙의 목적은 똑똑한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일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똑똑한 사람들일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선한 데가 아니라 악한 데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시편 106편 43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시편 106편 43절)’ 세상에서 가장 교묘한 사람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스스로 올무에 빠진 이유는 그들이 너무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선한데 똑똑한 것이 아니라, 악한 데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쪽에 포함이 되어야 할까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조금 어리석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똑똑한 악인보다는 미련한 선인이 되십시오.
이제 마지막 부분입니다. 시편 106편 44절부터 마지막 절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극적인 운명의 전환>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배은망덕하고 지독하게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크신 인자하심으로 심판을 돌이키십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번 선택한 백성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역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이렇게 간구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시편 106편 47절)’ 지금 시인의 상황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온 백성들이 흩어진 상황(고난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섭리를 언급하며 이 백성을 다시 한번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끝은 행복한 결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잠잠히 기다리며 그분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의 이야기를 알고 그 이야기 속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성경의 사건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건이 나의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가 오늘 나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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