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설교

    2026년 5월 1일(금) 똑! 똑! 똑! 아침밥 왔습니다.(룻 1:1~14)
    2026-04-30 17:17:1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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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은 왜 나오미를 쫓아갔을까? (룻기 11~14)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 이스라엘 민족은 혈연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택했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더럽고, 이방 민족과의 결혼은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선민사상이 구약 39권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 성경 중 한 책의 제목이 한 이방 여인의 이름입니다. 누구입니까? 오늘부터 살펴볼 이라는 모압 여성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룻기는 우리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던집니다.

     

    2. 룻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사사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자기들 마음대로 살던 무질서한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룻기의 배경입니다. 이 혼란한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요즘으로 하면 잘살아보려고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모압 땅으로 이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지만, 두 아들마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모압에 온 지 불과 10년 만에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대가 끊겼습니다. 가문이 완전히 풍비박산 난 것입니다.

     

    3. 지금도 남편이 없는 여인, 더군다나 자신을 봉양할 아들까지 잃은 여인은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하물며, 고대 사회에서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과부는 사회적 보호막이 전혀 없는 존재였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에는 기쁨즐거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만, 역설적인 것이 현재 그녀의 삶은 슬픔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이 절망적 상황에서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 귀환 길에 두 며느리 오르바가 함께 나섭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길 가다가 멈추어 두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 18절을 보겠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4.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이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였습니다. 나오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녀도 없이 남편을 잃은 두 며느리를 데려가는 것은 이들의 창창한 앞길을 막는 것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너희에게 줄 것이 없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좋은 사람 만나서 새 삶을 살아라.” 아마 이런 말을 하며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자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는 두 며느리 모두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보면 나오미가 남편과 자식 복은 없어도 며느리 복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재차 그들을 설득하며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때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울면서 나오미와 작별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대개의 사람이 그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은 달랐습니다.

     

    5. 룻기 1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이별의 입맞춤을 하고 떠났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다라고 성경이 전합니다. ‘붙좇았다라는 말을 구어체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존경하거나 섬겨 따르다, 섬기어 가까이 따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가 다바크인데, 원래 의미가 밀착하다, 아교로 붙이다입니다. 쉽게 말하면 강력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밀착하여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6. 여기서 오늘의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룻은 왜 나오미를 붙좇아갔을까요? 이스라엘 땅에 가면 룻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환영이 아닙니다. 이방 여인이라는 차가운 시선과 멸시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오미를 따라갔을까요? 바로 헤세드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인애, 자비, 선대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아무런 의무가 없음에도 약한 자를 위해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랑입니다. 계약을 넘어선 사랑,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충성입니다.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나오미를 향한 헤세드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늙은 시어머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의 여인 곁에 그냥 남기로 한 것입니다.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오직 그 한 사람을 향한 신의와 사랑으로 붙잡은 것입니다.

     

    7. 이방 여인 룻의 헤세드의 사랑이 나중에 어떤 결실로 이어질까요? 룻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나오미의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됩니다. 풍비박산 난 한 집안이 다시 세워집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고 혈통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혈통과 민족이 다르지만, 하나님은 룻의 마음 중심을 보셨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약한 자 곁에서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헤세드의 삶을 선택한 룻의 마음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룻기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멸시하는 이방 여인에게도 이런 신의와 사랑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는 어떠하냐?”

     

    8. 하나님은 룻의 순전한 헤세드의 사랑한결같은 신의를 통해 한 가정을 살리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가시고, 마침내 메시아의 족보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오미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사람, 극한 고통 속에 마음이 무너진 사람. 이런 분들에게 룻이 베푼 헤세드의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이방 여인 처럼,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신의를 지키는 헤세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곁에 있는 연약한 이웃을 향해 그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충성이 하나님의 크신 역사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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