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에서 선호 시설로 (룻기 2장 17~23절)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5월 5일 화요일 어린이날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히 임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2장 17절부터 23절까지입니다. <혐오시설에서 선호 시설로>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님비(Not In My Back Yard)현상이란 이른바 혐오시설이 자기 집 주위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입니다. 반면에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란 ‘내 집 앞마당에 설치해 달라’는 뜻으로, 지하철역, 대형 병원, 도서관, 체육시설, 대기업 같은 시설들을 유치하기를 원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님비현상의 대상일까요? 핌피 현상의 대상일까요? 안타깝게도 교회는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 바로 옆에 어떤 교회가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환영하시겠습니까? 꺼리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조차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크게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처럼 교회가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물리적 요인’입니다. 현실적인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 및 주차 문제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소음 문제, 예배당의 마이크 소리가 인근 주민들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발생하곤 합니다. 두 번째는 ‘심리적·사회적 요인’입니다. 특정한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전도 활동,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단 시설, 정치적 이슈를 만드는 일부 교회의 사례 등으로 그 지역의 이미지 저하나 치안 불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경제적·공간적 요인’입니다. 일부 대형 교회의 경우 주변 상권 활성화에 약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여러 불편한 요인들로 인하여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하락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는 교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교회 주차장과 카페, 도서관 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합니다. 또한 독거노인 반찬 봉사, 어린이 돌봄 서비스 등 그 지역의 필요를 채우는 복지 사업을 수행합니다. 우리 청파동교회가 이번에 서울형 키즈카페 청파동 점을 유치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방음 시설을 철저히 하고, 예배 시간마다 주차 안내 요원을 배치해 교통 불편을 최소화합니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교회를 바라보며 교회가 혐오시설이 아니라 선호 시설이 되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청파동교회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사회를 잘 섬겨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교회는 분명한 하나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움으로, 지역사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이루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 결과는 교회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지금의 교회는 어떠할까요?
오늘 본문에는 크게 세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룻, 나오미, 그리고 보아스입니다. 룻기는 바로 이 세 사람이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는 끊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일 먼저는 룻의 역할입니다. 여러분, 룻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기 2장 7절 말씀입니다. 룻이 어떤 사람인지 보아스가 물었을 때, 사람들이 첫 번째로 했던 말입니다. 첫 번째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처럼 룻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조금의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성실함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녀가 온종일 주운 보리의 양이 한 에바쯤 된다고 말씀합니다. 한 에바는 대략 20kg 정도 됩니다. 요즘 쌀 한 가마니가 몇 킬로그램입니까? 큰 가마니로 20kg 엄청난 양이지요. 또한 룻의 성실함은 하루 이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인 룻기 2장 23절을 보면, 룻의 이삭줍기는 보리 추수부터 밀 추수까지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간은 대략 2~3개월 정도 되는 긴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룻의 축복은 우연히 얻어걸린 복권 같은 축복이 아니라 꾸준한 성실함 속에서 맺어진 일상의 열매였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오미의 역할입니다. 나오미는 오늘 본문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을까요? 룻기 2장 19절에 그 힌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지금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에게 집요하게 묻습니다. 너는 대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한 것이냐? 너는 대체 하루 종일 누구를 만나고 그렇게 쏘다니는 거냐? 잘못 들으면 며느리 룻을 의심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며느리의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고 자세하게 캐묻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오늘 며느리 룻이 주워 온 보리의 양이 일반적인 양이 아님을 순간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분명 누군가의 배려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에게 집요하게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라는 사람과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며느리 룻에게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을 존경해야 할까요? 이러한 영적인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안테나를 민감하게 세우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을 존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보아스의 역할입니다. 보아스의 역할은 오늘날 교회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축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왔지만,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방인과 나그네를 환대하며 그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말로만 고백하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실제 타인은 섬기는 진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룻기 2장 20절)’ 이것이 바로 보아스에 대한 나오미의 평가입니다. 즉, 그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심지어는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까지 은혜 베푸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보아스의 선행을 본받아야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역사회를 섬기거나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전도와 상관없이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가 효 입양 프로젝트입니다. 자녀를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입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입양이라고 해서 조금 거창하게 들리지만, 지역사회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을 나의 부모님처럼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전화로 안부를 묻는 사역을 해왔는데, 이제 내일은 도배 사역과 형광등 교체 사역을 합니다. 크다면 큰 사역이고, 작다면 작은 사역입니다. 하지만, 이 사역이 우리 교회가 앞으로 지역사회의 축복 통로가 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역에 헌신하는 분들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보아스처럼 크게 사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모두가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사회의 꼭 필요한 시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일 계획된 효 입양 프로젝트 사역 가운데 함께 하여 주옵소서. 이 사역을 통하여 보아스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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