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룻기 4장 1~6절)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5월 7일 목요일입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4장 1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됩니다. 주차선을 지키지 않고 주행 중에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경우들입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운전자 간에 시비가 붙기도 하고 보복 운전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혹시라도 당하게 되면 누구든지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고의로 주차선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이 있고 일부러 깜빡이 켜지 않고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었거나 운전이 미숙해서 실수로 그런 것이 아니라 고의로 법을 위반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법을 지키는 것을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여기고 누군가에게 굴복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법을 위반하고 고의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상대보다 더 강한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잘못된 심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소시오패스라고 부릅니다. 소시오패스의 정확한 정의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법을 쉽게 위반하는 것입니다.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법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지키고 불리할 때는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큰 소리로 책망합니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는 소시오패스가 전체 인구의 무려 4%나 된다고 하니, 상당히 많은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명 중의 무려 4명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운전 중이나 보행 중에 행여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같이 싸우거나 다투려 하지 말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시시비비를 꼭 가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직접 상대하지 말고 경찰관을 불러서 대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먼저 보호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입니다. 같은 의미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아무리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정해진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법이라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제 보아스는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굉장히 당혹스러운 요청이었음에도 보아스는 선뜻 그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보아스 편에서도 평소 룻에 대한 호감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부담스러운 요청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밤중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청혼한다면, 누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성추행한다고 여기고 쫓아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즉, 평소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보아스도 그런 요청에 대해서 당황하지 않고 쉽게 답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법적인 절차가 남아 있음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보면 더욱 그에게 룻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룻과 보아스의 마음이 서로 통하고 그들에게 열렬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보아스는 법적인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리 둘이 사랑하니까 괜찮아. 한 가정을 살리는 일이고 내가 지금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데 뭐가 문제야!” 이런 식으로 꼭 해결해야 할 법적인 문제를 그냥 건너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을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성문에 올라가서 이 문제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룻기 4장 1절 말씀입니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이처럼 보아스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법적인 문제를 회피하거나 늦추지 않고 이렇게 직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법대로 하다가 비록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하지 못하게 되거나 자신이 마음으로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들이 취소되더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이렇게 아무개(기업 무를 자)를 먼저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개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도 가감 없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명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증인으로 보는 앞에서 전체적인 맥락과 이 사건의 요점에 대해서 그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랬더니 아무개로 불리는 기업 무를 자가 처음에는 뭐라고 답변합니까? “내가 받아들이겠다!” 나오미가 팔려고 내놓은 그 땅을 내가 사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룻기 4장 4절)’ 영어 성경으로 보면 ‘And he said, “I will redeem i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redeem’은 ‘구원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땅을 ‘되찾다’ 하나님의 기업을 ‘회복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때 보아스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은 당황했을 것이고 무척 아쉬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룻과의 결혼은 불가능해질 것 같아 조금은 낙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포기하지 않고 아무개에게 이러한 다음의 부연 설명을 합니다. “네가 만약 그 땅을 사게 되면, 땅만 사는 것이 아니라 룻과 결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도 낳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녀가 성장하면 그 자녀에게 오늘 네가 산 땅을 유산으로 주어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그제야 아무개는 “그럴 수 없노라! 그러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손해가 발생하니, 차라리 네가 대신 이 땅을 대신 사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보아스는 모든 법적인 절차를 완료합니다. 나중에라도 그 아무개가 딴소리하지 않도록 증거까지 남깁니다. 그것은 내일의 본문인 룻기 4장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뜻이 너무 강하다고 해서, 내 뜻이 너무 좋다고 해서, 편법과 불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나중에 걸림돌이 됩니다. 부끄러움의 요소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그 규칙과 법을 지키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시라고 해서 무법자처럼 마음대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법과 규칙을 통하여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 할 때, 1차 서류심사부터 설교 심사, 심층 면접까지 굉장히 까다로운 과정들이 이루어집니다. 지원자의 처지에서 1차 서류심사에서 떨어지면 그래도 충격이 덜 하지만, 마지막 3차 심층 면접 후 떨어지면 그 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마지막 심사까지도 합격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인하여 담임목사 청빙이 취소되면 그 지원자는 굉장한 정신적 충격을 겪게 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이민교회 같은 경우에는 최종 심사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 문제로 청빙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은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다시 사역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도 하나의 연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사용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었구나!”
“누구누구 때문이다! 방법이 근본적으로 문제다!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이럴 수 있느냐!”라고 생각해 보아야 마음만 아프고 괴롭습니다. 방법과 절차를 탓하기보다는 그저 그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었구나! 생각하고, 새로운 목회지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론이 좋지 않을 때,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구나! 그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 사역은 내 사역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방법을 탓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품격 있는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부당한 방법과 절차 때문에 손해 본 것 같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도 어기고 규칙도 어기고 내 맘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말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정도를 걸어가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나하나 침착하게 정해진 규칙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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