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가 된 나오미 (룻기 1장 15~22절)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샬롬! 지난밤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2026년 5월 2일, 5월의 첫 번째 토요일입니다. 5월 한 달도 주안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1장 15절부터 22절까지입니다. <마라가 된 나오미>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연극이 시작됩니다. 한때 당당한 모습으로 고향을 떠났던 ‘나오미’라는 여인이 10년 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저 여인이 정말 나오미냐?” 고향을 떠날 때는 남편과 두 아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혼자입니다. 그때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하여 나오미와 함께 길을 걷습니다. 그녀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입니다. 룻은 마을 사람들과는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방 사람입니다. 과연 이 두 여인의 숨겨진 인생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앞으로 이 두 여인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들이 혼자 ‘텅 빈 손’으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두 손을 잡고 걷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의 첫 번째 토요일, 절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룻기 1장 15절부터 18절까지는 나오미와 룻, 이 두 사람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이 대화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너의 동서 ‘오르바’처럼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룻은 나오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나는 어머니를 떠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는 목사님만 남자이고 다른 식구들은 모두 여자입니다. 목사님의 아내와 외동딸, 그리고 목사님의 어머니, 이렇게 남자 하나와 여자 셋이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남자인 목사님 한 사람을 두고 세 여자의 질투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특히 차를 탈 때 누가 운전석 옆에 탈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외출할 때마다 신경전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현실을 매 순간 부딪쳐야 하는 목사님으로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다. 며느리는 결코 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제가 심방을 갔던 어느 가정에서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교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가정이 한 가정이 아니라 여러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를 고부간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고부간의 관계처럼 상황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여러 경우를 보게 됩니다. 군대 선임과의 관계, 직장 상사와의 관계, 때로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런 경쟁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나오미와 룻의 관계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도 원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직장 상사도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군대 선임도 평생의 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갈등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누구나 불편한 사람이 있고, 누구나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예수님도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원수도 친구로 바꿉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모든 갈등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본문 룻기 1장 19절부터 22절까지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설교 앞부분의 연극에 등장한 여인처럼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올 때 마을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사람이 정녕 나오미가 맞는가?” 고향을 떠날 때의 나오미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오미는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사라지고, 든든한 두 아들도 사라지고 홀로 고향에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나 다른 외모를 가진 젊은 이방 여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오미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말했을까요? “나를 더 이상 ‘나오미’라 부르지 마세요. 이제는 나를 ‘마라’라 부르세요!”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마라’는 ‘괴로움, 쓴물’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래, 너희들이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바닥까지 떨어진 인생이다. 그 옛날 잘나가던 나오미는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허세 부리지 않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오미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부릅니다.
문학(신앙)적 역설입니다. 자신을 ‘심히 괴롭게 하고(20절)’, 자신에게 ‘재앙을 내리신(21절)’ 주체를 가리켜서 ‘전능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나오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상실의 배후에는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라는 욥의 고백을 지금 나오미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를 고통에 빠뜨린 하나님(전능자)께서 언젠가는 나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도 이유 없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기쁨도 이유 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고난이 찾아왔을 때, 왜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오냐고 절규하지만, 우리는 기쁨이 찾아왔을 때는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넘어갑니다. 하지만 기쁨도 고난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5월 한 달을 맡겨드리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온 가정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날입니다. 각 가정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는 교우들을 기억하시고, 그 가정과 자녀들에게 복 내려 주시옵소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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